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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고시' 보던 날/ 수능 시험장? 승진 시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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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고시' 보던 날/ 수능 시험장? 승진 시험장입니다

입력
2009.11.0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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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동국대 교정은 빗소리보다 왁자했다. 정문으로 통하는 사잇길은 비에 젖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영문 모르는 택시기사는 "일요일 아침부터 뭔 일이 난 거냐"고 짜증을 부리더니 답을 듣고도 영 이해가 안 되는 눈치다.

그럴 법도 하다. 이날 동국대에선 롯데그룹의 승진시험(필기)이 열렸다. 전 계열사 계장 3년차 이상의 과장진급 대상자 약 2,000명이 응시했다. 그 정도 숫자면 얼추 수용 가능할 텐데 캠퍼스는 미어터졌다. 응시자에 버금가는 인원이 더 운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 계열사별로 찾아온 응원단. 선후배 동료의 합격을 기원하는 플래카드와 '뱃놀이' 등 가요를 개사한 응원가 및 특색 있는 구호 소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장의 응원현장을 방불케 했다.

전날 설치한 간이천막에선 응시자에게 따뜻한 커피와 컵라면 등을 대접하고 있었다. 응시자는 시험시간(오전 10시)에 맞춰왔지만 응원단은 새벽 5시부터 부산을 떨었다. 마치 4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12일)의 예행연습 같았다.

'롯데 고시'로 불리는 이날 승진시험은 1983년 즈음에 시작된 롯데의 유서 깊은 전통. 롯데 공채출신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기업의 인사, 승진제도도 세월의 부침을 겪었건만 롯데는 승진 필기시험을 30년 가까이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시험과목은 전략경영 회계이론 조직행동 등 3개. 다들 만만치 않다. 업무 중에 곁눈질로 해결할 수 있는 분량과 수준이 아니다. 몇 개월 전부터 스터디 그룹을 꾸려 '족보'(기출문제)를 분석하고 모의고사를 치르기도 했단다. 특별휴가를 내린 계열사도 있고, 본인이 알아서 휴가를 낸 곳도 있다. 과장이란 꼬리표와 더불어 올라가는 급여를 갈구하며.

승진의 꿈을 안은 이들은 그렇다 치고, 다른 직장 동료들까지 휴일 꼭두새벽을 반납하고 응원에 나선 이유는 뭘까. 한판 축제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그 안엔 역시나 치열한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매년 과장 승진시험의 합격률은 30%대. 꽤나 깐깐한 시험인데, 합격률은 계열사별로 집계돼 우열이 가려지고, 인사담당자의 고과에도 반영된다. 합격률이 높아지면 해당 계열사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것. 그래서 계열사마다 합격 가능한 이만 선별해 시험에 내보내고, 예상합격률도 미리 적어낸다. 위성신 롯데홈쇼핑 교육담당 과장은 "7명이 지원했는데 65%이상 합격하면 인사고과에 'S'(5등급 중 최고)가 찍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B등급을 받았다.

그보다 직급이 높은 축은 아련한 추억과 행사의 의미를 내세웠다. 이동영 롯데홈쇼핑 경영지원부문장(이사)은 "20여년 전 동료들의 응원 덕에 과장으로 승진한 게 아직도 또렷하다"라며 "중간관리자의 기본소양 및 실무능력을 갖추자는 취지와 더불어 계열사별로 흩어진 그룹 식구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행사"라고 했다.

이철우(롯데쇼핑) 노병용(롯데마트) 대표 등 각 계열사 수장들도 찾아와 이날 우중 응원에 힘을 보탰다. 황혜연 대리는 "휴가까지 내고 공부했는데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라면서도 "동료들의 응원 덕에 쌀쌀한 비가 포근했다"고 전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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