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개봉된 영화 <터미네이터> 와 23년 뒤인 2007년에 개봉된 <트랜스포머> 에는 형태적으로 다르지만 변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특히 터미네이터에서의 액체수은 같은 것이 인간과 같은 기능을 갖춘 고체 금속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그 당시 상당히 많은 과학적 충격과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반면 트랜스포머에서의 변신은 어쩌면 기계적인 변형으로, 기술적 첨단성을 따진다면 터미네이터에서의 변신이 매우 수준 높은 첨단 나노기술로서 다소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트랜스포머> 터미네이터>
액체 상태에서 고체 상태, 혹은 고체 상태에서 액체 상태로의 물질 변신은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또한 이런 특성을 가진 신소재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물질의 흐름을 연구하는 유변학이라는 학문이라 한다.
옛날에 볼펜을 호주머니에 꽂아 두었다가 잉크가 새어 옷이 엉망이 된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볼펜 잉크는 점도가 매우 높아 흘러내리지 않을뿐더러 글씨도 아주 부드럽게 써진다. 볼펜 끝의 구슬이 굴러가면서 잉크에 힘이 가해지면 잉크의 점성이 묽어짐에 따라 잘 써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것은 고체 페인트, 치약, 버터 등등 주변에서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들은 고체가 외부의 힘에 인해 액체의 특성을 보여주는 예이지만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액체에서 고체와 같은 특성으로 변하는 것도 있다. 해변 백사장 위를 걸을 때 푹푹 빠져서 쉽게 걷지 못했던 것이 바닷물이 들어와 젖은 모래 위는 단단해져 걷기 쉬웠던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것도 그런 특성의 한 예이다.
집에서도 엄마와 자녀들이 이런 특성을 가진 마술 같은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녹말가루에 물을 약간 부은 후 주먹으로 재빠르게 힘을 주면 고체처럼 잘 뭉쳐지지만 손바닥을 펼치면 놀랍게도 액체 상태로 되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초ㆍ중ㆍ고 과학반 학생들 사이에 인기 있는 실험으로 일명 플러버 혹은 탱탱볼 만들기라는 게 있다. 이 실험은 외국에서는 슬라임이라 하는데, 보통 때는 끈적끈적한 점성을 가지면서 액체처럼 흐르다가 바닥에 던지면 고체같이 탄성을 갖고 튕기는 성질(이런 물질을 점탄성 물질이라 하는데 영화 <플러버> 에 점성과 탄성을 함께 가진 물질이라는 대사가 나옴)을 가지는 유변 현상을 소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달팽이는 이런 점탄성 특성을 이용해 벽면에 오르거나 거꾸로도 다닐 수 있는데, 공학자들은 이것을 응용해 벽면과 천정을 자유롭게 다니는 로봇을 개발 연구 중이다 플러버>
이렇게 탱탱볼 속에는 엄청난 첨단과학기술들이 숨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튕겨보는 공놀이 정도로만 인식하고, 그 속에 담긴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원리 이해를 위한 과학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최근에는 이런 액체와 고체 사이의 변신을 전기 및 자기장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액체 상태처럼 불규칙하게 분산되어 있던 물질에 외부 전기 및 자기장을 가하면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 형태의 고체 상태로 딱딱하게 변하는데, 이런 것들을 일본에서는 지진에 대비한 건축물 건설과 로봇, 항공, 자동차 공학 등등에 응용하기 위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기초과학 원리를 첨단기술과 제품에 응용한 공학과 연계해 과학교육을 하지 못하면 학생들의 발산적인 창의력 개발에 절대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최정훈 한양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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