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금주 후반부터 상임위 별로 291조 8,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을 심의한다.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와 감시 차원에서 국회의 예산심의 기능과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산을 볼모로 정쟁을 일삼다가 법정시한을 넘긴 뒤 날치기나 밀실 나눠 먹기로 예산안을 처리해왔던 게 그간의 현실이었다. 올해에도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걱정이 앞선다.
이번 예산국회에는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논란 등 가연성 높은 사안들이 수두룩해 어느 해보다 예산 부실심의 우려가 크다. 물론 정국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세종시 문제가 이번 예산 국회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4대강 사업 예산은 그 자체가 면밀한 심의 대상이어서 치열한 공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말고도 따지고 심의해서 삭감하거나 재조정해야 할 중요한 예산항목이 많다. 두 쟁점이 다른 사안들을 삼켜버리는 불랙 홀이 되지 않게 여야 모두 자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 예산안 심의하는 데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예산심의 기간이 120~240일에 이르는 주요 국가들과 달리 우리는 60일에 불과하다. 그마저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문 등을 제외하면 실제 심의기간은 20일 정도다. 밤을 새워 심의해도 부족할 판인데 정쟁에 몰두하느라 그 시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국회의 정부예산 삭감률은 0.12%에 불과했다. 사실상 예산 삭감 기능이 없었다는 얘기다. 주어진 기간만이라도 예산심의에 몰두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도 중요한 문제다. 근래 들어 16대 대선이 실시된 2002년을 제외하고는 12월 2일 시한을 지킨 적이 없다. 입법부가 상습적으로 헌법규정을 위반하는 것도 그렇지만 예산안 처리 시한을 헌법에 규정한 취지를 번번이 외면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국회는 "제발 좀 예산안을 제때 처리해 달라"는 기획재정부 예산편성 실무책임자의 읍소를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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