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벌레 모양의 미끼가 수면 위에 뜬 채 물살에 떠내려갔다. 눈에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등쪽에 붉은색 털을 붙인 것만 빼면 영락없이 물에 빠진 하루살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물 속의 물체가 미끼를 잽싸게 낚아 챘다.
산 새우의 수염을 잡은 듯 툭툭거리는 느낌이 팽팽해진 줄을 통해 전해졌다. 이내 낚싯대가 휘청거리고 물고기와 기자의 줄다리기 한 판 승부가 시작됐다. 밀고 당기기를 수차례. 20㎝급 산천어가 위용을 드러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분홍과 은빛으로 변하는 비늘색이 화려했다. 피라미처럼 얇지도, 그렇다고 붕어처럼 퉁퉁하지도 않은 몸매는 육감적이었다. 산천어를 일본인들이 '산의 여인(야마메ㆍ山女魚)'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듯했다.
3일 기자는 겨울에도 플라이낚시를 할 수 있다는 강원 평창군 미탄면 기화천을 찾았다. 인근 청옥산(해발 1,256m)에서 발원한 물이 한탄리 인근에서 땅으로 스며들었다가 옆 마을인 기화리 부근에서 다시 솟구쳐 흐른다. 땅 속 에너지를 한껏 머금은 덕에 연중 수온은 10도 안팎으로 겨울에도 거의 얼지 않는다. 동강과 만나는 진탄나루 인근에서 상류 쪽으로 2㎞ 구간의 여울, 다리와 절벽 아래 포인트가 산재해 있다.
전날 설악산 대청봉에는 눈이 41㎝나 쏟아졌고, 이날 중부와 남부 내륙 곳곳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지면서 날씨는 겨울 문턱을 넘은 듯했다. 하지만 기화천에 내려앉은 가을은 아직 한창이었다. 계곡 양 옆으로는 아기 손 같은 단풍이 붉은 빛으로 바탕을 칠했고, 갖은 나무들이 곳곳에 노란 점을 찍어 댔다. 붉고 노란 가을 색은 투명한 옥빛 계곡물과 줄을 맞춰 상류로 치닫고 있었다. 기자가 연두색 플라이낚싯줄로 한 폭 그림을 완성할 차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브래드 피트같이 멋지게 낚싯줄을 날리고 싶었지만 고된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줄 던지기는 좀체 쉽지 않았다. 이날 교육을 맡은 플라이낚시 25년 경력의 이광래씨는 "줄이 앞뒤로 직선을 그려야 원하는 곳에 미끼를 던져 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자가 던진 줄은 하늘에서 크게 8자를 그리며 하늘거렸다. 일반 낚싯줄에 발포 고무를 입혀 라인이 적당히 무거운 덕에 앞뒤로 던질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보다 못한 이씨, 개인 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해 기자에게 보여 줬다. 물에 던진 라인을 잡아챌 때는 낚싯대를 잡은 손을 30도 정도 들어 올리다가 속도를 내서 귀 옆 90도까지 끌어올려 멈춘다. 라인이 뒤로 뻗기를 기다렸다가 앞으로 창을 찌르듯 강하게 내미는 게 요령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화면 속 기자의 팔은 귀를 넘어 뒤통수까지 벗어났고, 낚싯줄이 뒤로 오기도 전에 팔을 앞으로 뻗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이씨는 "폼이 엉성하면 자칫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낚시 바늘이 걸려 위험할 수 있다"며 바늘도 달아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자습에 들어갔다. 100번도 넘게 똑같은 자세를 반복했다.
어깨와 팔목이 뻐근해 더 던질 수 없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이씨, 그제서야 다가와 바늘을 달아 줬다. 바늘에 수탉의 깃으로 꼬리를, 오리털로 몸통을 만들어 붙인 게 1㎝ 남짓 되는 날벌레를 닮았다. 플라이낚시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씨가 손수 만든 미끼란다.
오전 내내 낚은 것은 산천어 한 마리. 해가 중천을 넘어서자 바람이 불면서 입질까지 잦아들었다. 바람으로 물살이 일어 물 속 고기들에게 미끼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씨는 "물 속으로 가라앉는 웨트 플라이(Wet Fly)로 미끼를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미끼 교체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상류로 이동하면서 물살이 돌에 걸려 포말을 이루는 여울에 미끼를 던지면 2곳 중 1곳에서는 톡톡 치듯 입질이 왔다. 그러기를 서너 번. 입질에 이어 낚싯대가 휘었다. 이번에 건져낸 것은 25㎝ 크기의 송어. 연어목 연어과인 산천어와 같은 종이지만 산천어의 특징인 몸통 옆 갈색 가로 타원형 무늬가 없다. 빛깔은 산천어와 비슷한 게 아름다웠다.
큼직한 송어를 놓아 주고 의기양양한 기자는 하류 쪽에서 쉴 새 없이 줄을 던지고 있던 이씨에게 다가갔다. 좀 전에 기자가 허탕을 쳤던 여울. 이 자리에서 이씨는 20㎝급 산천어를 4마리나 건져 올렸다. 기자가 하루 종일 올린 조과를 전문가는 한 자리에서 거둔 셈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자랑은커녕 풀이 죽었다.
해질 무렵 장비를 정리하면서 놔두고 가는 것이 없느냐고 이씨가 물었다. "추억을 놔두고 갑니다." 소음이나 매연 같은 도시의 공해를 벗어나 스트레스를 잊고 가을 정취에 온몸이 젖어 드는 감동. 계곡에서 건져 올린 산천어의 생동감. 모든 것을 마음 속에 담아 가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플라이낚시인들은 마음 한 구석을 채울 또 다른 추억거리를 찾아 계곡을 누비는 것일 게다.
평창=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플라이 낚시,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배워야
플라이낚시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국내 저변 인구는 많지 않다. 정기적으로 플라이낚시를 하는 사람은 2,000여명. 용어가 까다롭고, 줄을 던져 미끼를 원하는 곳에 안착시키는 캐스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중도 포기자가 많아서다. 그러나 전문가에게 한두 시간 교육을 받고 계곡에서 몇 차례 연습하면 능숙하게 즐길 수 있다.
플라이낚시는 시작할 때부터 전문가에게 제대로 교육받는 게 중요하다. 자세를 봐 줄 사람도 없이 독학을 고집했다가는 평생 엉성한 폼으로 남들의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 교육은 플라이핏싱 앤 크래프트(www.bambooflyrod.co.kr), 레인보우플라이(www.rainbowfly.co.kr) 등 플라이낚시 전문점에서 받을 수 있다. 고객 관리 차원에서 장비 구매자에게 서비스로 제공되는 교육이다.
기본 장비는 플라이낚싯대, 릴, 낚싯줄, 플라이(미끼)다. 낚싯대는 5만원부터 100만원을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10만원 정도면 초보자가 쓰기 무난한 제품을 살 수 있다. 릴도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6만~7만원으로 마련할 수 있다. 줄은 멀리 던지기 좋도록 무게가 있는 플로팅 라인(Floating Line)과 바늘을 묶는 팁펫(Tippet), 이 둘을 연결하는 리더(Leader)로 구성된다. 플로팅 라인은 25m에 7만원대, 티펫은 30m에 9,000원, 리더는 2.7m에 4,000원 안팎에 판매한다. 전문가가 손수 제작한 플라이는 개당 3,000원 내외다.
본격적으로 플라이낚시를 하고자 한다면 양말까지 하나로 연결된 방수 바지, 물 이끼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밑창에 섬유를 덧댄 계류화도 마련하는 게 좋다. 방수 바지는 20만원대, 계류화는 15만원 안팎이다.
플라이낚시의 주 대상인 산천어 송어가 20도 이하 찬 물에서 살기 때문에 낚시를 할만한 곳은 산이 높은 강원 일대에 몰려 있다. 고성군 북천이 대표적인 곳. 플라이낚시 전문가 이광래씨는 "국내 산천어 최고의 포인트로 손색이 없다"고 추천했다. 국도를 따라 진부령을 넘어 간성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진부령에서 발원한 북천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하류 쪽 장신리에서 제추골 구역은 지형이 험하지만 대물이 많다.
얼마 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빼어난 경관을 뽐낸 삼척시 가곡면 덕풍계곡도 빼놓을 수 없는 산천어 낚시터. 덕풍마을에서 1, 2용소를 오르다 보면 낚시할 곳이 지천이다. 내린천 플라이낚시의 일 번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홍천군 내면 일대다. 월둔교와 모래소유원지가 핵심 포인트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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