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쭉빵빵. 딱 이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리 8개가 마치 대나무를 연상시키듯 곧게 쭉쭉 뻗었다. 이 녀석의 한문 이름이 그래서 '죽해(竹蟹)'인가보다. 몸통은 요즘 한창 살이 올라 먹음직스럽게 빵빵해졌다. 크랩의 제왕, 킹크랩(대게)이다.
커다란 솥에 물을 팔팔 끓여 갓 쪄낸 대게의 속살은 과장 조금 보태면 인절미나 찰떡 저리 가랄 만큼이나 쫄깃쫄깃하다. 그런데 쪄서만 먹으면 대게가 서운하게 생겼다.
세계 여러 나라의 스타일이 가미된 색다른 대게 요리가 무진장이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대게 요리를 맛보기 위해 2일 서울 중구 장충동 그랜드앰배서더서울호텔(구 소피텔)의 레스토랑 '카페 드 셰프'를 찾았다.
싱가포르식 vs 샌프란시스코식
싱가포르에서는 특유의 머드크랩(진흙게) 요리가 유명하다. 수심 200~1000m의 바다 속에 사는 대게와 달리 진흙게는 얕은 바닷가의 부드러운 진흙에 구멍을 파고 산다. 이 녀석을 칠리소스나 토마토 버터 마늘 같은 갖가지 재료로 만든 소스에 버무려 먹는 게 싱가포르식이다.
이 레스토랑의 웨인 골딩 총주방장은 싱가포르식 크랩 요리의 주인공을 진흙게 대신 대게로 과감하게 교체했다. 싱가포르식 칠리소스에 생강과 달걀 흰자를 섞어 또 다른 독특한 향도 연출했다.
쫄깃한 속살에 입힌 알싸한 싱가포르식 소스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대게 고유의 맛에 풍미를 더해 주며 잘 어울린다. 다민족 다문화 국가라는 싱가포르의 특색이 크랩 요리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미국 서부의 관문으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태평양 연안이라는 지리적 요건에 걸맞게 대게 요리가 인기를 끈다. 샌프란시스코식 대게 요리의 특징은 '숨김의 미학'. 완성된 요리 어디를 둘러봐도 게는 없다.
원형 돔처럼 부풀어오른 루(버터에 볶은 밀가루 도우)에 살짝 포크를 갖다 대면 파르르 갈라지며 아래로 가라앉는다. 대게는 그 안에 있다.
속살을 잘게 찢어 버섯 양파와 함께 볶은 다음, 크림소스에 넣어 스프를 만든다. 루가 섞인 게살 스프의 맛을 대표하는 단어는 고소함. 죽처럼 걸쭉해진 덕에 몇 숟가락만 떠도 든든해진다.
골딩 총주방장의 고향은 호주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에 자신까지 3대에 걸쳐 어부란다. 요리에 입문한 지는 올해로 17년. 그 이전엔 호주 동부의 해안 마을에서 새우와 게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을 직접 잡아 시장에 내다 팔았다. 덕분에 골딩 총주방장은 해산물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그는 "겨울에만 잠깐 잡을 수 있는 대게는 귀한 만큼 뛰어난 식 재료"라며 "속살 특유의 질감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고루 만족시킨다"고 말했다.
이번에 여러 나라의 음식 스타일을 대게 요리에 접목시켜 개성 있는 '퓨전식' 대게 요리를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점에서 착안했다고….
호주식 vs 한국식
카페 드 셰프의 스테이크 요리에는 시저 샐러드가 함께 나온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샐러드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저 샐러드라는 골딩 총주방장의 판단에서다. 시저 샐러드엔 보통 닭고기나 연어가 들어간다. 골딩 총주방장은 여기에도 대게를 넣는다.
쇠고기와 대게. 전혀 성격이 다른 재료인 것 같지만 희한하게도 입 안에서 맛이 따로 놀지 않고 무난하게 섞인다. 시저 샐러드가 육지와 바다의 맛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 준 덕분이지 싶다. 이 요리에 사용한 쇠고기는 호주산. 골딩 총주방장의 고향에선 대게를 대개 이렇게 맛보곤 한단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국식 대게 요리의 비법에 대해 물었다. 그저 물에 넣고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될 뿐 특별한 레시피랄 게 없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역시 대게가 들으면 서운할 말이다.
골딩 총주방장은 "제대로 익히려면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의 소금물에 삶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맹물에 넣고 삶거나 수증기만으로 익히면 대게 몸 안에 있는 특유의 향이 빠져나간다는 것. 대게가 원래 살던 환경과 비슷하게 만든 상태에서 요리하는 게 고유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주의점은 불의 세기와 익히는 시간. 소금물이 끓으면 대게를 넣고 불을 줄여 25분 정도 익히면 된다. 너무 익히면 살이 줄어들고 맛도 없어진다.
■ 대게 고르는 법/ 다리 활발하고 배 누런 놈이 속살 꽉차
11월부터 국산 대게가 본격 출하됐다. 경남 포항시 남구 구룡포에서 10년 넘게 대게 도ㆍ소매업을 하고 있는 황용구 대게닷컴(daeke.com) 대표는 "3일 1kg이 조금 넘는 국산 대게가 영덕에서 10만3,000원에 팔렸다"며 "올 들어 이곳에서 국산이 처음 입찰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게를 보고 국산과 수입산을 구분하기란 전문가들조차 쉽지 않다. 수입산은 일반적으로 국산보다 껍질이 두껍다는 게 가장 큰 차이. 껍질에 흰색 가루가 묻어 있는 경우는 러시아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황 대표의 설명이다.
수입산 구분은 둘째 치고 그냥 맛 좋은 놈만 고를라 쳐도 만만치 않다. 오랫동안 대게를 다뤄 온 어민들의 '감'을 따라잡긴 언감생심 불가능할 터. 그나마 황 대표를 설득해 얻어 낸 맛 좋은 대게 찾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뒤집었을 때 배쪽이 새하얀 놈은 살이 별로 없다. 약간 누런 빛을 띠어야 껍질을 까보면 살이 꽉 차 있다. 다리는 불그스름한 게 좋다.
▦다리를 부러뜨렸을 때 속살이 쭉 빠져나오면 많아야 80% 정도밖에 살이 안 찬 놈이다. 속살이 안 빠져나와야 맛있는 대게로 친다.
▦배와 다리를 눌러 봐서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물렁물렁하면 살이 덜 차 맛이 없다. 특히 옆구리 부분이 통통하고 단단한 놈이 맛있다.
▦들어 봐서 다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놈을 고른다. 수족관 안에서 많이 움직이는 놈일수록 싱싱하다.
▦몸통이 온통 진홍색을 띠는 건 붉은대게(홍게)다. 대게는 등쪽은 주황색, 배쪽은 흰색에 가깝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사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