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진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은 점점 더 마음이 조급해지고, 빨라진 세상보다 더 빠르게 오고 가야 할 물건이나 서류들은 15년 전에는 없던 단어인 '퀵 아저씨'들의 손에 의해 배달된다. 특히 요즘처럼 갑자기 날씨라도 추워지면 아저씨들의 활약은 더없이 쓸쓸해 보이는데….
얼마 전 동네 단골 마트의 주인장을 똑 닮으신 퀵 아저씨가 사무실에 들어오셨다. 어디 잡지사가 보낸 서류를 들고 오신 것이었다.
늦은 오후여서일까, 인상 좋은 아저씨는 유난히 지쳐 보이셨다. "저, 혹시 커피 있으시면 한 잔 주실 수 있나요?"우물쭈물 아저씨는 말씀하셨고, 나는 벌써 종이컵을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온통 카페인이 잔뜩 필요한 젊은 사람들뿐이어서 모두가 블랙커피만 마시기 때문에 적당히 허기도 면해 주면서 맛이 구수한 일명 '다방 커피'를 타드릴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사무실 구석에 있던 설탕을 대충 한 스푼, 그리고 인스턴트커피를 한 스푼 컵에 담아 뜨거운 물로 녹이면서 아저씨가 원하던 커피는 왠지 이 맛이 아니었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의 커피 맛은 다양해졌다. 커피 전문점이 생겨서 원두니 헤이즐넛이니 했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 같은데 이제는 에스프레소와 드립 커피, 원두는 어디 산(産)이며 크림을 넣을지 우유를 넣을지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
우유를 넣는다면 거품을 내서 넣을지, 그냥 우유를 부을지, 우유는 일반 저지방 무지방 중에 무엇을 부을지 다시 고민하는 세상.
선택권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지만, 퀵 아저씨의 커피를 타 드리면서 문득 그 많은 옵션을 다 누리려면 새롭게 쏟아지는 정보들을 학습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키아토는 무언지, 카푸치노와 카페오레는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다 보면, 그냥 '설탕이랑 프리마를 둘둘둘 비율로!' 만드는 커피믹스가 편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세상, 바쁜 마음을 잠깐 쉬려고 갖는 커피 타임은 현대인에게 또 다른 공부거리가 되었으니, 그저 요즘 같은 날씨에 배꼽까지 따뜻해지는 커피믹스는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어서 반가운 그런 음료인 것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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