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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눈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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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눈먼 돈

입력
2009.11.0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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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아무한테나 가지 않고,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어른들의 말이다. 돈에는 다 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희한하게도 임자가 아닌 사람이 돈을 탐내거나, 돈의 눈을 무시하고 함부로 차지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에서 244억원 짜리 복권에 당첨된 대통령 김정호(이순재)는 어떻게 하면 아무도 몰래 그 돈을 찾아 은퇴 후 실컷 써볼까 고민하다 쓰러진다. 청와대 조리사의 말처럼 돈벼락도 잘못 맞으면 죽는다. 거액복권 당첨자들의 수많은 불행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에는 '눈먼 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갈 곳, 쓸 곳이 분명하게 정해진 돈을 자기 것으로 착각한다. 나랏돈의 경우 특히 심하다. 적자가 나건 말건 공기업들은 흥청망청이다. 감사원 감사결과 2006~2008년 정부지원을 받은 민간단체 16곳의 임직원 21명이 지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이 드러나 사기, 횡령 혐의로 고발 당했다. 민예총 회계담당은 무려 4억9,290만원을 빼돌렸다. 기본적으로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그릇된 인식 탓이다. 감시장치와 제도의 미비, 운용의 비현실성은 그 다음 문제다.

▦억지로 눈 멀게 만든 돈도 있다. 경기단체의 국가보조금이 그렇다. 레슬링협회, 배드민턴협회 지도자 8명이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청소년스포츠 교류대회나 국가상비군 훈련 숙박비와 식비의 '눈'을 없애려 액수를 부풀려 계산한 후 돌려 받는 '카드캉'으로 2억1,000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그 돈 대부분을 선수들을 위해 사용했다"고 말하지만 믿을 사람은 없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임직원들도 공사비를 부풀리고는 1억원을 돌려 받은 혐의로 수사 받고 있는 것을 보면 특별한 일도 아닌 모양이다.

▦눈이 없는 척하는 돈도 있다. 현대차가 1년에 지급하는 노조전임자 임금은 무려 137억원. 공식 전임자 98명(금속노조, 민노총 파견 포함)에 임시상근자 119명까지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다. 기아차도 87억원이나 된다. 노조로서는 이보다 더 안전한 '눈 감은 돈'은 없다. 덕분에 배짱투쟁까지 가능하니 지급 중단에 당연히 반대다. 그 동안 노조 위세에 눌려, 골치 아픈 다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먼 돈에 관대했던 회사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사람들아, '눈먼 돈' 좋아하지 마라. 다른 돈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에는 너의 눈과 마음까지 멀게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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