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의 시대를 연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3일(현지시간) 만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AP, AFP 등 외신은 이날 프랑스 학술원인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프랑스를 20세기 세계 지성계의 선두에 올려 놓은 거장의 영면을 확인했다고 타전했다. 구체적인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즉각 "그는 항상 새로운 지식을 추구했고 모든 형태의 분파주의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웠다. 공화국은 지칠 줄 몰랐던 이 인문주의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추도문을 발표했다.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비 스트로스는 190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교육받았다. 파리대학에서 법학사와 철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임상심리학, 정신분석학은 물론 루소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방사형으로 뻗어있었다. 그는 철학교수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으나 교단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임봉길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레비 스트로스는 형이상학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철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문화의 바탕에 흐르는 근본적인 것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레비 스트로스는 1933년 우연히 접한 로버트 로위의 <미개사유> 에 감명을 받고 인류학과 민족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관심은 결국 그를 열대로 이끌어 브라질 상파울루대 교수로 부임해 카두베오족, 비콰라족 등을 현장에서 연구하도록 인도했다. 미개사유>
1941년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신사회조사연구원 등에서 문화인류학 연구를 이어갔다. 1948년 프랑스로 귀국해 파리인류학박물관 부관장으로 일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친족의 기본 구조'라는 박사학위 논문은 책으로 출판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출간된 <슬픈 열대> <구조 인류학> <신화학> 등도 세계 사상계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인류학과 구조주의 방법론을 20세기 말 학계의 중심 테마로 자리잡게 했다. 신화학> 구조> 슬픈>
그러나 이런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임 교수는 "기존의 사회과학은 제도나 조직에 초점을 맞췄는데, 레비 스트로스의 관심은 다양한 사회문화 체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의 정체 규명에 있었다"고 소개했다.
임 교수는 "그는 이원적 대립 관계의 고찰을 통해 구조주의라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고안해 냈으며 이는 인류학의 범주를 넘어 문학과 철학, 문화비평 등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도 모두 레비 스트로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레비 스트로스는 1982년 은퇴한 뒤에는 자택에서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그 한 해 전인 1981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경주와 양산 통도사, 안동 하회마을 등을 돌아보기도 했다.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으며 세 번 결혼해 두 명의 아들을 뒀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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