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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2102'

입력
2009.11.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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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명작은 아니다. 그러나 아찔한 재미가 있다. 동공은 커지고 머리가 멍해진다. 재난영화의 종합선물세트라 해도 무방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2'는 인류 멸망을 다룬다. 지구 내부의 핵이 녹으면서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초대형 지진과 해일이 인류 최후의 날을 알린다. 한 과학자가 절멸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음을 미국 정부에 보고한다. 그러나 비극적 정보는 세계 주요국 정상과 부호 등 극히 일부에게만 전달된다. 정부는 쉬쉬하면서 가진 자들을 위한 인류 보존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최후의 순간을 맞는다.

재난영화의 종합선물세트

'2012'는 현기증 나는 물량 공세를 자랑한다. 외양만 따져도 2억 6,000만 달러짜리 블록버스터로서 손색이 없다.

영화는 인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짧게 처리하고 다짜고짜 관객들을 아수라장의 한복판으로 몰아넣는다.

영화 초반 지진으로 대형 쇼핑센터가 둘로 갈라지는 장면은 시작에 불과하다. 로스앤젤레스 도심 주차타워에서 자동차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고가도로가 무너져 내린다. 고층 빌딩들이 주저앉고 쓰러진다. 지진으로 초토화한 로스앤젤레스가 결국 태평양 아래로 그 존재를 감추는 비극적 장관이 이어진다. 당장에라도 발 밑이 꺼질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각적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거대한 예수상과 미국 워싱턴의 워싱턴 타워 등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한국영화 '해운대'가 아끼고 아끼다 막판에 찔금 보여주는 대형 쓰나미 장면이 예사롭게 스크린을 채운다. 마치 모든 종류의 재난영화를 단번에 보여주려고 작정한 듯하다. '볼케이노'를 연상케 하는 초대형 화산 폭발이 등장인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해상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처럼 거대한 파도가 대형 선박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항공기의 아찔한 활강은 숱한 항공 재난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재난 속에 피는 가족애

영화는 인류 멸망의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보통 사람들의 분투를 클로즈업하며 뜨거운 가족애를 전하기도 한다. 이혼남 잭슨(존 쿠삭)이 두 자녀와 전처를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동분서주하는 장면은 첨단 시각효과에 절대적으로 의지한 이 영화에 인간미를 심는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과학자 햄슬리(치웨텔 에지오프)와 선택 받은 자들이라도 안전하게 구하려는 미국 정부 수뇌부의 갈등도 흥미롭다. 인류를 대표해 살아남을 자들의 가시 돋친 설전이 깊이 있는 성찰까진 불러내진 못하지만 이 영화가 그저 그런 단순한 팝콘 무비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한다.

볼거리에 집중한 나머지 작위적인 설정이 적지 않다. 잭슨 등이 우연찮게 '귀인'을 만나 목숨을 구하는 장면들은 서사의 개연성을 약화시킨다. 잭슨 일행이 온갖 재난을 헤쳐나가는 과정도 이 영화의 정체가 모험영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인류 멸망의 비애 대신 구사일생의 안도감을 종종 발산하기 때문이다.

'인디펜던스 데이'와 '투모로우' 등으로 재난영화의 대가 자리에 오른 롤랜드 에머리히가 연출했다. 거대한 스펙터클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재능을 보였던 이 감독은 예전 작품과 달리 이야기의 짜임새에 꽤 공을 들였다. 그러나 여전히 성긴 이야기의 그물 사이로 감동의 물고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67분이 꽤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12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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