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僞作) 논란에 휩싸였던 고(故) 박수근 화백의 유화 '빨래터'에 대해 법원은 '진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진위 판정 결과의 변화가능성을 전제하며 추정적 결론을 내렸을 뿐, 명시적 판단은 하지 않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조원철)는 4일 미술품 경매업체 서울옥션이 위작 의혹을 제기한 미술잡지사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낸 3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빨래터는 원 소장자인 존 릭스씨가 박 화백에게 교부 받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언론의 입장에서 의혹보도를 할 만했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표면적으론 잡지사의 승리지만, 쟁점이 됐던 위작 여부에 대해선 옥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양측이 제시한 과학ㆍ안목검증 결과가 다르다는 점에서 출처감정 결과에 무게를 두었다. 즉, 원 소장자인 릭스씨의 여권에 찍힌 한국 출입기록, 릭스씨가 박 화백과 주고받은 편지내용, 릭스씨 집에서 촬영된 영상물에 등장하는 박 화백의 다른 그림 등을 토대로, 재판부는 "빨래터는 박 화백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과학ㆍ안목검증에 대해서도 옥션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재판부는 "박 화백이 질감을 표현하고자 굵은 실로 직조된 캔버스를 이용한 것에 비해 빨래터가 가는 실로 직조된 캔버스에 그려졌다는 이유로 위작이라고 판단한 검증결과는 비교대상이 2점에 불과한 것을 볼 때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같은 색상이 다른 원소값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도 "매번 다른 색소를 혼합해 칠한다는 점에서 다른 원소분포 값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소수 감정위원들의 안목감정이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다수 감정위원들의 안목감정보다 우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위작의혹 보도에 대해 재판부는 '박 화백의 기존 그림과 빨래터의 화풍 차이, 지나치게 좋은 보존상태' 등을 근거로 "언론의 입장에서 충분히 의혹제기를 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서울옥션은 "박 화백이 줬다고 추정된다는 것은 진품이라는 뜻"이라며 "손해배상청구는 기각됐지만 불필요한 논쟁이 없어진 이상 항소는 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반면, 위작 의견을 냈던 최명윤 명지대 문화재보존관리학과 교수는 "과학감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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