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전성태(40)씨는 아직도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데 익숙하지 않다. 서글픈 사연이 있다. 곱슬머리와 하얀 피부, 옅은 갈색 눈동자 때문에 어린 시절 '혼혈'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서 말하는 게 버릇이 됐다. 색다른 외모에 대한 자각은 내적 상처가 됐고 그것이 아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추체험이 아니라 원체험에 근거한 소설입니다." 전씨의 단편 '이미테이션'('문학과 사회'2008년 겨울호)은 거창하게 말하면 외모에 대한 작가의 정신적 외상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작가의 사적 체험을 '다문화 사회의 차별극복의 전망'이라는 사회적 주제로 확산시켰다.
소설은 특이한 외모 때문에 혼혈인으로 오해 받아 멸시 속에 살다가, 혼혈인이라도 미국인ㆍ백인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회 분위기를 간파하고 자신의 인생을 세탁해 사는 한 '짝퉁 혼혈인'의 인생유전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혼혈인을 다루고 있지만, 탈북자, 이주노동자 등 공동체에서 배제된 '타자'들의 삶의 조건에 관심을 기울이며 공동체 구성원들의 반성과 성찰을 요구해온 전씨의 소설적 화두와 닿아있다.
다문화 사회의 소수자를 다루면서도 그들을 객체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짝퉁 혼혈인'이라는 캐릭터를 창조, 주체의 위치로 끌어올린 점이 독특하다. 미국인으로 행세하기로 마음먹은 뒤 신분상승을 경험한 주인공이"어차피 인생은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베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건 거짓 같았다"라며 자기를 정당화하는 대목은 허를 찌른다.
단일민족중심주의라는 한국사회의'신화'를 비트는 동시에'이미테이션'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짝퉁문화를 동경하는 또 다른 병리적 현실을 꼬집는 솜씨가 묘미를 더한다. "주제를 제대로 모으지 못했으며 웃음 속에 날카로운 풍자가 아쉽다"라는 지적에 대해 그는"정색하고 쓰고 싶지는 않았다. 주제 자체가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담론화돼 있어 본질적인 문제까지 들어가기보다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혼혈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면서, 같은 외국인이지만 선진국과 후진국 외국인을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뒤틀린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의 변.
특유의 입담과 해학이 소설을 풍성하게 한다. 가령 중학교 시절의 주인공이 머리를 염색한 것으로 오해하고 체벌을 가한 뒤 나중에는 그를 혼혈인이라고 착각,"니 혼혈이라고 와 진작에 말 안했노? 민족은 핏속에 있는 기 아이라 이 가심에 있는 기라. 오늘 니 미와서 글캤다 맘묵지 마라. 니한테 민족으 혼을 심어줬다. 이리 생각캐라"라고 어설프게 위로하는 교사의 훈계 대목은 씁쓸한 헛웃음을 자아낸다.
전씨는 제42회 한국일보 문학상 본심 후보작가 중 유일하게 리얼리즘, 민족문학 진영의 적통을 잇는 작가로 꼽힌다. 리얼리즘 진영에 대한 갱신 요구에 대해 그는 "이제 진영을 나누는 것은 우습다. 창작방법론으로서 '리얼리즘'의 갱신은 의미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리얼리즘 '정신'의 계승"이라고 강조했다.
■ 약력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업 ▦1994년 단편 '닭몰이'가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 ▦소설집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 ▦신동엽창작상 (2000), 제비꽃 서민소설상 (2009) 여자> 늑대> 국경을> 매향(埋香)>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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