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영화가 등장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 . 시간>
웅장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화려한 그래픽의 애니메이션도 아니다. 겉보기엔 그냥 로맨스다. 하지만 주인공 헨리(에릭 바나 분)는 지금까지 나온 영화 인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시간 여행 능력을 발휘한다. 과학의 한계를 초월한 그의 능력은 물리학자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할 정도다.
'웜홀 제너레이터'
헨리는 무제한적인 시간 여행을 한다. 과거든, 미래든, 어느 장소든 가리지 않고 간다. 김성원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이에 대해 "시공간을 휘게 할 수 있다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적용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놀지 않고 같이 움직인다. 이 시공간을 둥글게 원기둥 모양으로 말면 원기둥의 축 방향이 공간이고, 원기둥을 감싸는 방향이 시간이다.
이렇게 굽어진 시공간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원기둥을 감싸며 시간 방향으로 계속 가다 보면 다시 처음의 위치(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연구해 온 굽은 시공간 가운데 대표적인 게 바로 '웜홀'이다. 웜홀은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우주의 좁은 통로. 시공간을 구부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바로 중력이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헨리를 '웜홀 제너레이터'라고 표현했다. 안 교수는 "웜홀은 한 시공간과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곳"이라며 "과학적으로 보면 헨리는 웜홀을 무의식적으로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헨리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웜홀을 만들려면 무한대에 가까운 엄청난 에너지를 생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헨리는 웜홀을 한 번도 아니고 일생 동안 '수시로' 만들어 낸다.
영화 속 시간 여행의 의문점
헨리가 웜홀 제너레이터라고 치면 영화에선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항상 벌거벗은 채로 시공간을 이동한다는 점이다. 사실 시간 여행을 할 때 굳이 옷을 벗을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이다. 일단 웜홀에 들어가면 몸이든, 옷이든 함께 다른 시공간으로 전달될 수 있다.
또 다른 의문은 시간 여행을 시작할 때 헨리가 사라지는 속도다. 물리학적으로 따지면 웜홀이 생성되는 순간 헨리는 아주 빠르게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선 몸의 외곽부터 서서히 지우개로 지우듯 없어진다. 마치 순간 이동하는 과정을 느린 화면으로 찍은 것 같다.
순간 이동은 시간 여행과 함께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온 주제다. 영화 <매트릭스> 에서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 분)이 바로 순간 이동 능력을 구사한다. 매트릭스>
사람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하려면 우선 몸이 원자 단위로 잘게 분해돼야 한다. 이를 옮겨간 장소에서 다시 완벽하게 조립하는 것이다. 헨리가 사라지는 장면은 마치 인체를 이루는 1023개의 원자가 분해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듯하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
헨리와 부인 클레어(레이첼 맥아덤즈 분)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역시 시간 여행을 한다. 부모의 시간 여행 능력이 자식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됐다는 영화적 상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웜홀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유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영화는 헨리의 몸 안에서 시간을 인지하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추정을 의사의 대사를 통해 넌지시 내비친다. 실제로 사람에겐 '시계 유전자(클락진)'가 있긴 하다.
하루 동안 단백질 분해 속도를 규칙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이를 근거로 잠이나 배고픔 같은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김재섭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클락진은 과거 현재 미래 같은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주기(日週期)를 인지하는 유전자"라며 "유전자가 잘못돼 시간 여행을 한다는 개념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탁월한 시간 여행 능력을 자랑하는 헨리도 거스를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운명이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 과거로 돌아가 운명을 바꿔 놓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논리적 모순 때문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은 과거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모여 형성된 결과물이다. 결국 시간 여행으로 과거를 바꾼다면 현재와 같은 자신이 존재할 수 없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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