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견뎌내야 했던 엄혹한 시간이 시련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일본인 청년을 감동시켜 새 눈을 뜨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극단 반(叛)의 '겨울꽃(寒花)'이 그 형상화에 도전한다.
초연되는 이 무대는 안 의사가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일본인이 안 의사를 만나 겪게 되는 변화를 따라가는 무대가 중시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광풍에 휩쓸리는 일본인의 양태다. 양심을 가진 일본인, 전쟁에 눈 먼 군국주의의 격랑 속을 헤매던 그의 변화 양상에 집요한 시선을 보내는 연극은 안 의사의 존재를 역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안 의사에게로 초점을 맞춰가는 무대의 중심인물은 쿠즈노키라는 일본 청년이다. 그가 통역관으로 뤼순 감옥에서 만난 것은 한 조선인의 의연함이었다. 안 의사의 투옥에서 처형까지를 따라가는 연극의 대부분은 그가 안 의사를 알게 되고 제국주의의 망령에 휘둘린 자신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 할애돼 있다.
연출자 이강선씨는 사실주의의 정공법으로 극을 차분히 이끌어가는 길을 택했다. 단 배경상황 설명이 필요한 대목에서는 일장기나 당시의 필름 등 영상의 도움을 받는다.
원작자 카네시타 타츠오(鍾下辰男)는 1997년 이 희곡으로 제32회 기노쿠니야 연극상을 수상했다. 중심인물의 입을 빌지 않고 주변인들의 간접적인 언행으로 안 의사를 부각시켜 내는 극작술이 주목받았다. 박주용, 방윤철 등 출연. 22일까지, 청운예술극장. 화~금 오후 8시, 토 3시 7시. 일 3시. (02)764-7606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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