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3만원꼴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이 참여하세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7동 김포공항 항공기소음피해보상추진위원회 사무실. 어깨띠를 두른 추진위 관계자들이 소장(訴狀) 접수 안내문을 나눠주자,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볼 것도 없다는 듯 소장과 함께 착수금 3만원을 잽싸게 접수했다. 이들은 김포공항 인근에 사는 양천구 신월동 신정동 등의 주민들.
추진위가 2006년 주민 3만여명을 모아 제기한 소송이 최근 1심에서 승소한 상황에서 또 다시 대규모 추가 소송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정신조 추진위원장은 "최근 1심 판결에서 일부 승소한 뒤 전화 문의가 폭주해 벌써 1,500여명이 접수했다"며 "추가 소송에도 수만명의 주민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항공기 소음피해에 대한 공항 인근 주민들의 민사소송이 잇따라 승소하면서, 관련 소송 참여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항공기 소음피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관련 소송은 주기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민간 비행장과 군 비행장을 각각 관리하는 국토해양부와 국방부가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특별법 제정 등으로 피해 주민을 지원하겠다"는 밝히고 있지만, 주민들은 "현금보상 등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소송은 끝이 없을 것"이라며 압박하고 있다.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중인 소송들이 최종 확정 판결될 경우 배상액은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여 정부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최근 항공기 소음피해 소송에서 법원은 예외 없이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달 9일 서울남부지법은 국가가 김포공항 인근 주민 3만351명에게 233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6월에는 서울중앙지법이 수원비행장 인근 주민 3만690명이 낸 소송에서 48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월에도 광주공항 인근 주민 1만3,964명에게 21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같은 판결의 기폭제가 된 것은 2005년 1월 대법원 판결이다. 김포공항 인근 주민 9,000여명이 국내 첫 항공기 소음피해 소송을 제기한 지 5년여 만에 대법원은 "소음도가 85웨클(WECPNLㆍ공항소음도측정치) 이상인 주민에게 피해 보상을 해주는 게 적절하다"고 확정 판결한 것이다.
보상액은 소음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주민들이 하루 평균 1,000원꼴로, 손해배상청구 시효가 3년인 점을 감안하면 3년마다 피해액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수원 대구 강릉 광주 등 전국 각지 공항에도 소송이 잇따라 11월 현재 모두 140여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며 총 청구금액은 4,000여억원에 달한다.
특히 김포공항의 경우 인근에 주민들이 대거 거주하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온 터라 '소송전(戰)'은 점입가경이다. 추진위는 항공법이 정하고 있는 공항소음피해지역까지 합치면 인근 소음피해 주민이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3년마다 계속 소송에 나선다면 배상액은 천문학적 액수에 달할 수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소송전을 피하기 위해 올해 안에 가칭 '공항소음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서둘러 제정해 인근 주민들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원하는 현금보상은 포함되지 않을 것을 보여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직접 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법을 제정해도 공동이용시설 설립 등 간접 지원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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