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운찬 국무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대독하는 과정에서 국회 본회의장에 또 한 차례 소동이 빚어졌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10ㆍ28 재보선 당선자와 신임 국무위원의 인사가 끝난 뒤 여야 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에 앞서 시정연설을 듣겠다고 밝히면서 소란이 시작됐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연단으로 몰려나와 정 총리의 시정연설을 가로막고,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나서 연설하라"고 항의했다.
김 의장이 몇 번 "자제하라"고 요청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시정연설을 읽어 나가던 정 총리가 잠시 연설을 중단, 소란이 멎기를 기다려야 했다. 나중의 발언으로 보아 여야 의원들이 의사진행 발언은 헌재가 '절차 하자, 결과 유효'를 결정한 미디어법 관련이 대부분이었다. 헌재 결정대로 어디까지나 입법부가 알아서 할 일이어서 정 총리나 정부에다 대고 뭐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인사청문회의 앙금과 세종시 수정 문제 등으로 정 총리에 대한 심사가 틀어져 있음을 잔뜩 드러냈을 뿐이다.
야당은 당연히 정부ㆍ여당의 자세나 국회의장의 본회의 진행 방식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중계방송을 지켜보는데도 추태를 드러내는 방식은 치졸하다. 더욱이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정 대표는 "앞으로 6개월 동안 민주당의 과감한 변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 서민과 중산층 등 국민 대다수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으로 국민 평가를 받겠다"고 다짐했다. 그 지향점이 근본적 인식의 변화를 통한 국민 지지 확보임은 누가 봐도 확연하다. 그러나 순간순간의 감정에 따르는 행동을 버리지 못하는 한 인식의 변화는 공허하게 마련이다.
민노당 의원들이 의석에서 용산 참사 관련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구호를 적은 종이를 좌우로 펼쳐 든 모습이 성숙해 보일 정도였다. 어떤 말이든 어른스럽게, 점잖게 할 수 없다면 입을 다무는 게 낫다. 그런 일이 생기니 대통령의 직접 시정연설을 정례화하기도 어려워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