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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미촌 못이 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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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미촌 못이 얼었다

입력
2009.11.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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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하늘물살 일으키며 떠다니던 흰뺨검둥오리들,

그 느릿느릿한 일렬종대의 평화가 사라졌다

어쩌다 그 행렬 끝에서

새끼 오리 한 마리 짧은 날개 파닥파닥거릴 때

붉은 잇몸 다 드러내 씨익 웃으며

물결 한 자락씩 밀어주던 저녁들도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고

낚시꾼도 라면 끓는 소리도 없이 저 홀로 남아

입 꽉 다문 미촌 못, 엉덩이께를

꽝,

꽝,

꽝,

꽝,

매질하듯 얼음구멍을 파니

● 쬐끄만 뿔을 이마에 꽂은 어느 푸른 날의 바람이 못 한 가운데 살짝 열린 숨통을 타고 흘러나와, 흘러나와 온종일 빙판 위를 메에엠 메에엠 돌아다닙니다 까까머리 소년의 허둥대는 그림자 하나 뒤에 매단 채

올해 들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한 네 칸 정도. 매일. 그것도 쓰기 어렵더군요. 그 날의 날씨, 만나는 사람들, 통화 내용, 읽은 책, 마신 술 등등, 그래도 부족해요. 네 칸도 못 채울 정도로 산다고 생각하니 좀. 그래서 이런저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었더니 어제 한 생각을 오늘 또 하고, 내일 할 걱정을 오늘 또 미리 하고 그러더라구요.

참 부지런하게 산다고 생각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농사 짓는 사람처럼, 아니, 그보다는 사관처럼 일어난 일들을 일어난 그대로 적기 시작했어요.

1단지 입구 앞 단풍나무가 완전히 붉게 변한 날을 기록하는 것처럼. 이렇게 일기를 쓰니까 좀 마음에 들더군요. 어쩐지 내가 쓰지 않으면 영영 잊힐 역사를 기록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1단지 입구 앞 단풍나무의 소소한 역사라도 엄연한 역사라지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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