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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 미팅 '솔로탈출 119'/ "서로의 아픔 더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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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 미팅 '솔로탈출 119'/ "서로의 아픔 더 잘 알기에…"

입력
2009.11.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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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프러포즈 시간이 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2급 뇌병변장애인 조태훈(31)씨가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무대에 올랐다. 2006년 제대를 한달 남긴 그를 급습했던 뇌경색의 후유증이다. 무대에선 원형 테이블 4곳에 둘러앉은 장애인 선남선녀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조씨 눈엔 오직 한 사람만 보였다.

그의 힘찬 호명에 주인공 김예증(26ㆍ지적장애 3급)씨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왜 그녀를 좋아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을 듣는 둥 마는 둥 조씨는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연달아 외쳤다.

뇌경색으로 인한 반신마비를 이겨내려 조씨는 꼬박 3년간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덕분에 다리를 제외한 부분은 회복됐지만, 오랜 투병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는 모두 끊어지고 말았다. 조씨는 "생각해보니 최근 한달 동안 만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더 이상 외로움을 겪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조씨는 김씨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의 증표인 화분을 건넸다. 하지만 김씨는 확답 대신 울음을 터뜨려 조씨를 애태웠다.

지난달 3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카페에선 장애인들의 단체 미팅이 열렸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가 지난해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하는 '솔로탈출 119' 행사였다. 가을비 내리는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참가자 수는 당초 예정된 40명(남녀 20명씩)보다 적은 29명(남 15명, 여 14명)이었지만, 경남 김해, 강원 철원, 멀게는 제주에서도 2명이나 상경할 만큼 열의는 뜨거웠다.

협회 이춘희 팀장은 "최근 조사를 보면 결혼 적령기 이전에 장애를 입은 성인 중 이성 친구가 없는 경우가 70%에 이르고, 이중 73%는 이성 교제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연애와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공개적 만남의 장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팅의 규칙은 이랬다. 남녀를 각각 4개조로 나눈 뒤, 여자들은 조별 지정 테이블에 앉고 남자 조는 차례로 테이블을 돌면서 대화와 눈빛을 교환한다. 만약 호감 가는 이성이 있으면 각자에게 3장씩 주어진 '사랑 카드'를 건넨다.

카드를 많이 받는 것은 인기의 징표지만 짝을 얻는다는 보장은 아니다. 행사 마지막에 상대방을 최종 선택하는 순서가 있는데 이때 서로를 지목한 남녀가 커플이 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론 사랑을 얻기 힘들다고 판단된다면 공개 프러포즈로 상대에게 구애할 수 있다.

초면의 선남선녀들은 여간 긴장한 게 아니었다. 짧은 인사와 소개가 끝나면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거운 침묵만 교환하고 있었다. 결혼전문업체 직원으로 단체 미팅 진행에 오랜 경험이 있는 사회자 이재목씨에게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씨는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던 분들이 많아 스킨십을 유도하는 게임 등 다양한 방편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체장애인의 거동, 뇌병변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도우러 나온 늘푸른나무자원봉사단 회원들도 분위기 돋우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순희씨는 "저분에게 물 챙겨줘라" "이분께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라"고 연신 대화를 독려했다.

휠체어 너머로 서로 안마해주기, 손을 잡고 눈으로만 인사하기, 치아를 활짝 드러내기 등의 게임이 이어지면서 딱딱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려나갔다. 말이 많아졌고 웃음이 잦아졌다. 황대상(29ㆍ지체장애 2급)씨는 옆자리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넉살 좋게 "사랑합니다"라고 외쳐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행사엔 유명 구족화가인 이윤정(37ㆍ뇌병변장애 1급)씨도 참가해서 자기 작품으로 장식된 내년도 달력을 나눠주기도 했다. 1, 2급 중증장애인도 6명이라 말하기조차 힘든 사람도 있었지만 다들 불편한 제 몸을 기울여 그 어눌한 말들을 경청했다.

이성교제 기회가 적은 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듯 이날 행사는 결혼을 염두에 둔 맞선자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참가자 중 두 명은 어머니를 대동했다. 농업 공무원인 아들 송종현(36ㆍ지체장애 5급)씨와 함께 충남 아산에서 올라온 김순분(63)씨는 "아들이 지난해 업무를 보다가 농기계에 다리가 딸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며 "서로 아픈 사람들인 만큼 아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여자가 있지 않겠냐"고 며느릿감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춘희 팀장은 "참가자 선정 과정에서 장애 정도는 따지지 않았지만 현실적인 만남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은 고려했다"고 말했다.

3시간의 교제가 끝나고 커플 맺기의 시간이 왔다. 공개 프러포즈엔 두 명이 도전했다. 조태훈씨의 도전은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1급 지적장애 여성 조재련(22)씨의 구애는 결실을 맺었다.

한아름(36ㆍ지체장애 1급)씨는 휠체어에 앉아 조씨가 건넨 장미를 받아들었고, 자신을 선택해준 그녀에게 5개월간 준비해온 우클렐레(기타와 흡사한 4줄짜리 현악기) 연囹?마이클 잭슨의 'I'll be there'를 들려줬다. 연주를 마친 한씨는 "내 생애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이라며 웃음지었다.

이날 연인으로 탄생한 커플은 모두 3쌍. 윤경일(43ㆍ뇌병변 1급)-김유진(32ㆍ정신지체 3급)씨가 커플이 됐고, 송종현씨는 박숙은(39ㆍ지체장애 3급)씨와 맺어져 노모를 흐뭇하게 했다. 송씨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 챙겨줘야 할 사람이 반려자 아니겠나"라며 "비록 내 몸이 불편하지만 서로 채워주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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