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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난처한 정치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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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난처한 정치심판

입력
2009.11.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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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반칙 행위를 준엄하게 꾸짖었으나 옐로카드를 빼 들었을 뿐이다. 선수를 퇴장시키거나 경기를 몰수하지 않았다. 진 팀은 심판을 비난했고 상대 팀 역시 결과에 안도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뭐 이런 판결이 다 있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한 방송사 앵커가 그런 사람이 많다고 주의를 환기시키며 9시 뉴스를 마무리한다.

국회 자율 강조한 헌재 결정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재판결과를 둘러싼 격랑을 만났다. 헌재는 국회의 신문법 표결에서 대리투표에 의한 야당의원들의 권한침해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방송법 표결은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률의 효력, 정확하게는 가결 선포행위의 유ㆍ무효 확인은 국회 자율에 맡기는 게 마땅하다는 이유로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오프사이드는 맞지만 들어간 골은 인정된다'는 등의 비아냥거림이 꼬리를 물고, 일반 국민의 법의식보다도 못한 재판이라는 격렬한 비난까지 쏟아졌다.

그러나 헌재는 정치적 기관이 아니라 사법기관이다. 중립적인 제3자이자 심판자의 입장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하고 결정한다. 9인의 재판관들이 각기 독립적인 의견을 내고 이를 취합하여 결론을 낼 뿐이다. 이번 결정문도 들여다보면 재판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대립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재판관들도 결론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심했을 것이다.

결국 헌재는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권한 침해만을 확인하고, 이로 인하여 야기된 위헌·위법 상태의 시정은 국회에게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논란할 여지는 있다.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를 확인하고도 국회 자율 존중 등을 내세워 가결 선포의 무효확인이나 취소를 회피하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의 합헌적 행사를 통제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갈파한 조대현 재판관과 송두환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여운을 남긴다.

아무튼 헌재는 결정을 내렸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번 결정으로 신문법과 방송법의 효력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을 두고 다시 여야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헌재가 소모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 결정의 이유를 살펴보면, 권한침해가 인정된 이상 두 법률의 절차상 하자를 시정하는 것은 국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취지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공이 국회로 넘어온 셈이다. 정부는 법률을 시행하면 되고, 여야는 국회에서 이 문제를 건설적으로 논의하면 된다. 야당이 헌재 결정을 근거로 미디어법 재논의를 요구하면서, 정치적 결정이므로 승복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나라당 역시 '민주당이 어떤 요구를 해도 재논의는 없다'며 빗장을 닫아 걸 일은 아니다. 여야가 법 시행을 지켜보며 시간을 갖고 개선방안을 논의해 나가는 성숙된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정치갈등 떠넘기지 말아야

헌재가 정치심판으로 호출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필요할 때는 헌재를 찾다가 원치 않는 결론이 나오면 격렬히 욕하는 정치인들의 황폐한 행태에 국민은 식상한지 오래다. 우리 정치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비타협·대결 위주로 치닫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양보와 설득이라는 피곤한 길보다는 헌재의 심판으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게 훨씬 더 확실한 방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 갈등을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헌재로 전가시키는 행태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누구 손을 들어 주었는지 보다, 정치문제를 걸핏하면 헌재로 가져가 해결하려는 정치권의 고질적 행태에 선을 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정이지만, 그 점에서는 공감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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