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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 작가 인터뷰] (2) 김연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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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 작가 인터뷰] (2) 김연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입력
2009.11.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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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막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한 한 여성이 있다. 서른 살 생일이면 자동차를 타고 북미 대륙을 횡단하고 있거나, 혹은 멋진 남자와 근사한 저녁을 먹다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내 서른 번째 생일이었네'라고 중얼거려보겠다는 낭만적 환상은 깨진 지 오래다.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가 서울로 신혼여행에 나선 육촌 친척 부부를 하루종일 에스코트하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일어나는 것이 그녀가 맞아야 할 서른 살 생일 아침의 현실이다.

김연수(39)씨의 단편소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문학수첩' 2009년 여름호)는 연애와 이별을 겪고 서른 살의 문턱에 들어선 이 여성의 하루를 쫓아간다. 여성의 내면풍경의 변화가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변화의 이야기, 매 순간순간 바뀌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의 변화는 세계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김씨의 지론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변화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옛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행위가 그 변화를 상징한다. 여성이 망설임 끝에 전화를 건 계기는 '용산참사의 불꽃'이다. 여성은 이별 후 택시기사가 된 옛 남자친구가 승객들의 행태를 동영상으로 중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연을 한 잡지 기사에서 읽는다.

여성이 사이트에 접속하자 놀랍게도 화면에는 택시 안 풍경 대신 불길과 함께 타오르는 건물의 옥상 풍경이 중계되고 있다. 전화를 걸까 말까 몇달간 고민하던 여성은 용산의 그 불꽃을 떠올리고 수화기를 든다.

"이 소설의 단초가 된 것은 용산사태의 불이었어요. 불의 사회적ㆍ정치적 의미를 설명하는 데는 실패했고 간신히 쓸 수 있었던 게 '그 불을 봄으로써 우리는 무언가 변했을 것이다'라는 점이었어요. 여성은 자기 연애가 끝나서 외롭다고 느끼죠. 그 찰나에 용산의 불을 보고 자신의 외로움이 어떤 사람들의 슬픔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여성의 외로움과 용산참사에서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한 소년의 편지가 교차되는 작품의 결말 부분은 인상적이다. 비록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사적인 연애소설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김씨의 이 소설은 '개인과 사회의 연대는 가능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질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타인의 고통과의 공명, 그리고 소통'이라는 김씨 소설의 최근 주제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김씨는 말한다. "지금은 그 감정 변화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요. 이 감정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행동과 연결될지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 감정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정서가 아닐까 해요." 개인이 단자화해버린 21세기 현실에서 그 공명이 80년대식 연대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일 것이다. 김씨의 소설은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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