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시청과 경찰청 인근에 새로 지어진 LA 메트로 구치소 광장에 동양적 철학과 감수성을 담은 공공미술 작품이 들어섰다. '기원의 종_보호와 봉사를 위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9개의 삼나무 기둥과 108개의 작은 동종으로 이뤄져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 앞에는 '숙진 조'라는 한국 작가의 이름이 선명하다. 구치소가 내년 1월 문을 열 예정이라 울타리 밖에서만 볼 수 있는데도 맑은 종소리에 이끌려 가던 길을 멈추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메트로폴리탄의 중심가에서 뜻밖에 마주치는 명상의 공간이다.
재미 설치작가 조숙진(49ㆍ사진)씨가 LA시의 위촉을 받아 제작한 이 작품이 최근 사전 공개 행사를 통해 미술계 관계자와 지역 주민들에게 선보였다. 때맞춰 LA 사비나리 갤러리에서는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활동해온 조씨는 리처드 롱, 조나단 보로프스키 등과 함께 '1980년대 이후 조각계를 이끈 45인'에 선정됐을 만큼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다.
조씨는 "도심 한가운데에 교도소가 생기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고, 특히 인근 '리틀 도쿄'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면서 "교도소가 사람들을 위협하고 두려움을 주는 공간이 아니라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백팔번뇌를 떠올리게 하는 108개의 동종은 한국에서 제작해 가져온 것들이다. "종소리에는 차분한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있어요. 또 희망과 구원 같은 좋은 의미도 있지요. 108개의 종이 울릴 때마다 우리의 고통과 번뇌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일본의 절에서는 새로운 해의 출발을 비는 제야의 종을 108번 친다고 하더군요."
보기에는 다 같은 종들이지만, 각각의 무게가 달라 움직일 때마다 서로 다른 톤의 소리를 낸다. 종 속에는 '평화' '조화' '희망' '사랑' '믿음' 같은 단어들이 적힌 금속판이 달려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기원의 글을 받아 작품에 반영시킨 것이다. 종들을 둘러싼 삼나무들은 500~800년간 살다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은 것들이다.
조씨는 폐기 처분돼 버려진 나무 조각이나 의자, 창틀 등을 주워 새로운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사비나리 갤러리에 전시된 '의자들' 역시 같은 맥락의 작업이다. 어둡고 고요한 공간 속에 각기 다른 모양새의 낡은 의자 80여 개가 다리가 잘린 채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버려진 나무들을 줍다 보니 10여년 전부터 의자가 달리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사람들과 닿아있던 물건이라 그런지 빈 의자에서 사람의 흔적과 과거의 시간들이 느껴졌어요. 살다가 사라지는 우리 삶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는 내년 1월 뉴욕의 유명 화랑인 오케이해리스 갤러리 개인전, 2011년 헌팅턴미술관 개인전을 앞두고있다. 도미한 후 한국에서는 2007년 아르코미술관에서 딱 한번 개인전을 연 게 전부다. 그는 "내년에 한국에서 사진작업을 담은 책을 출간하기로 해 브라질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내용은 죽음에 관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로스엔젤레스=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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