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는 최종 결론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헌재는 민주화 이후인 1987년 10월 9차 개정헌법을 통해 출범한 기관이기 때문에 권력에 의한 재판간섭 등 과거사 문제에서는 법원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 그러나 일부 사건에서 엄격한 법리보다는 상황 논리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헌재는 1997년 7월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노동관계법 등 5개 법안을 기습 처리한 것에 대해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했지만 가결 선포 행위 자체는 무효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냈다. 이번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과 거의 유사한 결론이다. 이후 국회에서는 다수당의 법안 기습ㆍ강행 처리로 인한 파행이 끊이지 않았다. 2005년 12월에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강행 처리에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지만 헌재는 역시 야당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2004년 헌재는 행정수도 이전을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언급하고 "서울에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관습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헌재는 "헌법제정 당시 자명하거나 전제된 사항 및 보편적 헌법원리와 같은 것은 반드시 명문 규정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명백한 실정 헌법 체제에서 생경한 관습헌법 논리까지 동원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헌재가 행정수도 이전반대 여론을 의식해 무리한 논리를 들이댔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헌재 결정 이후 헌법 교과서에서 '관습법은 헌법의 하위법인 일반법 절차를 준용한다'는 표현이 삭제되는 등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해에는 전임 정부에서 제정된 종합부동산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를 위헌 결정해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데 헌재가 앞장섰다"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0년 헌재가 학원법의 과외금지 규정을 위헌 결정한 이후 사교육 열풍이 불어닥쳤다는 점도 지적된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 헌재가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소장판사는 "헌재가 기본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서는 소극적 결정을 내리면서, 재산권이나 경제적 자유 문제에 있어서는 이를 적극 옹호하는 쪽으로 헌법을 해석한다는 비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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