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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쩍은 북촌 한옥마을/ "토박이는 6명밖에…" 전통도 운치도 다 사라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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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쩍은 북촌 한옥마을/ "토박이는 6명밖에…" 전통도 운치도 다 사라질 판

입력
2009.11.0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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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걸러 한 집은 빈집이야. 10년 사이에 원주민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한옥도, 삶의 전통도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아."

북촌 한옥마을의 중심인 가회동 31번지로 접어드는 골목 입구에서 45년째 약국을 지키고 있는 정휘숙(72)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젊은 사람들은 죄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어. 새로 이사온 부자들이 가끔씩 이곳을 별장처럼 찾아와. 밤에 탤런트랑 외국인들이랑 같이 와서 접대하곤 하는데, 시끄럽고 쓰레기도 잔뜩 버리고 가서 원주민들은 싫어해."

정씨처럼 오랫동안 가회동에 살고 있는 사람도 이제 몇 남지 않았다. 40대 중반부터 2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수종 할머니는 "가회동에서 20년 이상 산 사람들이 한 6명 정도 남았다"면서 "이제는 아는 사람이 얼마 없어 밖에 나가도 별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2005년 이사온 건축가인 차영민(65)씨는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외지인들이 사서 빈집이 많은 31번지 안쪽 골목을 동네사람들이 '죽음의 거리'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10년 전만 해도 가회동 분위기가 이렇게 썰렁하지는 않았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이 할머니는 "그때는 이웃이랑 다 친하니까 김치 20포기 담그는데도 여자 9명이 와서 같이 담그고 그랬어. 주인 취향은 신경도 안 쓰고 마음대로 간 맞추고(호호). 그땐 참 재미 있었는데…."

가회동이 변한 건 2001년 시작된 서울시의 '북촌가꾸기사업'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 '한옥아낌이모임(한아모)' 등 부유층이 수년에 걸쳐 이 일대 한옥 수십 채를 사들이면서, 오랫동안 이곳을 지키던 원주민은 하나 둘 북촌을 떠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외지인들은 한옥을 사들여 전면적으로 수리한 뒤 기껏해야 1년에 몇 번 모임장소로 사용했다. 2004년쯤부터 북촌이 별장촌과 같은 '죽은 공간'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한아모 등은 당시 "주민들이 한옥을 헐고 다세대 주택을 짓는 것을 막기 위한 보존목적으로 사들인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가회동 지역에서 '한옥 수선'을 시작하면서 전통한옥의 원형이 남아나지 않게 됐다는 게 원주민들의 목격담이다.

정휘숙씨는 "한옥마을이라고 불리는 게 창피할 정도"라며 "겉으로는 한옥이지만 들어가보면 모두 현대식"이라고 말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신축된 한옥 1층은 대부분 콘크리트 건물로 지은 양옥"이라며 "이제는 아파트에 살던 사람도 한옥의 멋을 누리면서도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서울시가 매입한 한옥도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1940년대 할아버지 때부터 이곳 한옥에 살았다는 이모(38)씨는 "서울시에서 매입한 집이 꽤 있는데, 그 중 우리 집 맞은 편 한옥은 오래되고 좋은 나무와 돌을 다 빼고 싼 재료로 바꿨다"며 "수선비용을 맞추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곳에도 상업시설이 하나 둘 침투하면서 가회동도 결국 인사동이나 삼청동처럼 상업지역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가회동 31번지 입구에는 옷가게, 음식점, 찻집 등이 있고, 31번지 언덕 위에는 갤러리도 들어섰다.

조사결과 31번지 71개 한옥 중 이 같은 상업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 변경한 가구도 8채나 됐다. 재작년부터 시작해 세 번째 이곳을 찾았다는 관광객 김경미(43)씨는 "옛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찾았는데, 빈집이 많아 대부분 잠겨 있고 공방이나 박물관밖에 못 봐 아쉽다"고 말했다.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남보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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