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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비는 없고 바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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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비는 없고 바람만 있다

입력
2009.11.0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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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냐에서 마사이족 마을 근처에 머문 적이 있다. 호텔에서 일을 돕는 조금 개화한 마사이족 몇 명과 평원에서 염소고기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한 어느 날 저녁 무렵, 구름 모양새가 심상치 않은 게 비가 올 듯한 태세가 되는 게 아닌가. 주저하는 나에게 그 가운데 연장자가 하는 말이 비는 안 올 거니 그냥 나가잔다.

불안한 마음으로 평원에 나가서 불을 지피는데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야속한 마음으로 짐을 챙기려는데, 그 나이 든 마사이는 "이건 비가 아냐. 바람일 뿐이지"라고 선문답 식으로 응대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일단 근처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한지 5 분쯤 지났을까. 이게 웬일, 비가 그치고 하늘도 청명해졌다. 멀리에서 내리는 비를 바람이 잠깐 가져온 것일 뿐이라는 그의 말대로, 그 날 저녁 평원에는 비는 없고 바람만 있었던 것이다.

마사이족은 날씨 예보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과, 염소고기를 불에 그슬려 구우면 맛있는 요리가 된다는 사실을 그날 알게 되었다. 맹수들과 대치하며 사냥을 주업으로 하는 마사이족들에게는 날씨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능력이 사활적으로 중요해서 그런 것일까?

마사이족과 같은 기상예측 능력이 없는 우리들에게 현대 수학은 대안을 제공한다. 20세기 초에 수학적인 방식으로 기상예측이 가능하다는 이론이 나왔다. 기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에 물리학의 법칙을 적용해서 미분방정식으로 그 관계를 표현할 수 있고, 이 방정식을 풀면 날씨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게 그 골자이다. 물론 어렵게 들리지만, 인류가 바람의 냄새를 맡아 날씨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지 않는 한, 이런 이론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안다. 일기예보가 틀려서 많은 이들이 낭패를 당하고 기상청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수백억을 들여 도입한 슈퍼컴퓨터는 무엇에 쓰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과학자들은 여러 연구를 통해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상당히 이해 하게 되었다. 온도, 풍속, 습도, 기압 같은 이런 변수들이 날씨에 미치는 영향을 수학 방정식으로 기술하는 것도 많은 진척이 있었다. 그런데 이 방정식들을 풀려면, 현대 수학의 한 분야인 수치 해석학의 여러 결과를 사용해서 근사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를 무지막지하게 사용해야 하니, 비싼 슈퍼컴퓨터를 가진 나라가 일기예보도 잘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날씨 오보가 잦았던 것이 컴퓨터 성능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외국에서 만든 기상 모델과 이를 푸는 수치 알고리즘 및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그대로 사용한 탓이 크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에 적합한 방식의 수학적인 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체계적인 수학적 훈련을 받은 연구자들이 기상 모델링에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련 분야의 수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이 공동연구를 통해서 한반도의 특성을 반영한 기상 모델을 개발하고 최종 프로그램 개발까지 국내에서 하는 수준에 다다라야 한다. 이런 원천기술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 관련 수학연구소에 대한 국가 지원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일기 예보에 대한 신뢰가 커져서 바비큐 파티 일자를 걱정 없이 잡게 되는 날이 곧 오면 좋겠다. 한국에서 마사이족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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