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그린화'바람이 거세다. 환경문제가 점점 급박해지는 것과 비례한다. 지구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상 기후에 따른 홍수와 해일 피해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닐 정도다.
우리나라도 작년 광복절에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후, 전 산업에서 그린 성장을 위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자동차 출시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철강 산업에서도 쇳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려는 공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전자 산업에서도 전기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현재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우리 후세에게 가능하면 현 수준으로 넘겨주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린 성장을 위한 우리의 현 논의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은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새 제품, 새 기술, 새 공법…. 현 대책들은 모두 '미래 지향'에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뒤로 돌아보자. 자꾸 새 것을 만들게 되면 그 과정에서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게 곧 저탄소 녹색성장을 해치는 일이다. 오히려 기존 제품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잘 관리해서 사용하는 게 지구 온난화를 줄이는 효과적인 첫 걸음이다. 컴퓨터와 서버 등 정보기술(IT) 제품이 좋은 예다.
우리나라의 IT 제품 소비 수명은 세계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다. 기존 제품으로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데도 신제품이 나오면 곧바로 기존 제품을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은 물론,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핸드폰, 컴퓨터, 서버 네트워크 등 멀쩡한 제품이 2~3년이 지나면 폐기처분 된다. 제품 생산자들은 당연히 판매 확대를 위해 은근히 중고품 버리기를 조장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포춘지가 500대 기업 IT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중고 컴퓨터 제품을 사용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이 사용해 봤으며, 그 이유에 대해 비용 절감, 기존 장비와 호환성, 추가적인 학습 불필요 등을 들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중고 IT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중고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IT 초강국임에도 우리나라의 중고 IT시장 규모는 거의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쓰던 제품들이 대부분 버려진다는 얘기다.
친환경제품을 생산하고 구매하는 것도 녹색성장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새 제품이 나왔다는 이유 때문에 좀 더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우리가 버리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직도 어느 시골 방앗간에서는 참기름을 짜는, 50년 넘은 낡은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오래된 것을 귀하게 여겨 보자. 그게 우리 후세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또 다른 녹색 성장의 길이 아닐까.
최창근 마이트레이드마스터닷컴 · 기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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