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 지점입니다. 그때 굉장했죠. 숭어 수백마리가 떼지어 올라가는 장면은 장관이었습니다."
서울 양천구 신정교 인근 안양천. 근처를 산책하던 주민에게 숭어떼 이야기를 꺼내자 지난 7월말 직접 목격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안양천 하면 오염과 악취의 대명사였다. 주변에서 쏟아내는 공장폐수와 생활하수가 뒤섞여 흘렀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숭어뿐만 아니라 버들치, 얼룩동사리 등 1,2급수 어종이 서식하고, 천연기념물인 323호 황조롱이와 물총새, 꺅도요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하천 바닥 돌을 들어보면 다슬기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2007년 하천정화를 위해 방사한 다슬기들이다. 당시 방사된 20만 마리의 다슬기들은 바닥에 깔린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며 4㎝까지 성장했다.
안양천 지천인 학의천 상류와 인덕원 근처에는 여름철 멱 감고 수영하러 온 아이들이 몰려들고 겨울에는 철새 1만마리가 머무르는 새들의 낙원으로 탈바꿈한다. 안양천에 대한 호감도 10년 사이 확 변했다. 1999년 안양시가 실시한 시민의식조사에서 가장 가기 싫은 곳 1위로 뽑힌 안양천은 올해 실시한 똑같은 조사에서는 가장 가고 싶은 곳 2위에 올랐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지자체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다. 1999년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안양천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13개 지자체는 수질개선대책협의회를 결성해 자연형 하천을 조성해야 한다는데 합의하고 공동노력을 펼쳤다.
학의천과 안양천을 시작으로 주요 하천에는 자연형 호안이 조성됐고, 갯버들 등 정화기능이 있는 식물이 이식됐다. 징검다리와 여울을 설치해 물고기들의 보금자리도 마련됐다. 2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안양천살리기네트워크도 지자체에 지속적으로 수질개선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고 정기적으로 생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002년 네트워크의 활동목표였던 '숭어와 참게가 돌아오는 안양천'이 현실이 됐다.
안양천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그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도심하천인 안양천 유역은 인구 증가에 따른 지하수 이용 급증으로 하천으로 유입되는 수량이 줄어들어 건천(乾川)화 속도가 다른 하천보다 훨씬 빠른 편이다. 이 때문에 안양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하천에 수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하루 30만톤 처리능력이 있는 안양시 석수하수처리장에서는 매일 3만6,500톤을 고도처리 후 여과하고 있다. 자외선 소독까지 마친 2~3등급 수준의 물은 관로를 따라 상류보내 인덕원과 군포교 쪽에서 방류한다. 시는 내년 4월 하수처리장을 통해 추가로 3만7,500톤의 물을 공급할 계획이다.
지하철 용출수도 안양천 수량을 유지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4호선 인덕원역과 범계역에서는 1급수 수준의 맑은 물이 하루 5,400톤씩 하천으로 쏟아져 수질개선과 수량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 계곡과 상류지역 지천에서 흐르는 청정수와 생활하수가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오수 분리 벽도 효과를 보고 있다.
학의천 상류를 중심으로 6곳 5.5㎞ 구간에 조성된 분리 벽은 하수관을 통해 유입되는 오수를 가둬두기 때문에 상류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하수관으로 새지 않고 그대로 하류 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이 밖에 학의천의 발원지로 물 150만톤을 저장하고 있는 백운저수지도 하루 2,000톤의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삼성천 상류에 건설된 소형댐도 홍수예방은 물론 용수공급에 활용되고 있다. 안양과 의왕, 군포시는 안양천 상류에 빗물저장소를 만들어 물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안양천이 진정한 자연형 하천으로 거듭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주민들이 둔치에 각종 체육시설과 공원, 자전거도로 조성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애써 구축한 생태 축이 자칫 끊어질 우려가 높다. 안양시 관계자는 "최대한 자연친화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공시설물 조성을 자제하고 있다"며 "주민들 민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계속 설득 중이다"고 말했다.
■ 생태복원 공신 '안양천살리기네트워크'
안양천을 가꾼 일등공신은 안양천살리기네트워크다.
이 모임은 1999년 지역 환경운동연합과 YMCA, YWCA 등 안양천 유역 21개 민간단체가 행정구역 단위를 넘어 구성됐다. 안양천 수계에는 서울시 구로구 금천구, 경기도의 안양, 군포, 의왕시 등 14개 지방자치단체가 인접해 있어 관리가 지자체별로 따로 이뤄지는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유한킴벌리와 오뚜기 등 기업들도 안양천을 살리는 주체로 참여했다.
네트워크는 단체별로 지역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안양천 모니터링, 환경교육, 생태조사 등을 통해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성 초기부터 모니터요원을 구성해 폐수투기 등 환경감시 활동을 벌였고 하천정화활동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물제작, 자체 제작한 생태지도 등을 각급 학교에 배포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안양천 살리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안양천 둔치 곳곳에 들어선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에서는 기름이유출되고 타이어가루가 날려서 환경을 위협했다. 안명국(47) 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주차장 철거로 개선된 둔치의 모습을 보여주며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꾸준히 설득했더니 일부 주민들은 결국 수긍했다"고 말했다.
지자체 정책에도 네트워크의 의견이 속속 반영돼 결실을 맺고 있다. 산본천 복원을 꾸준히 요청한 결과 2005년 군포시는 도시계획에 복원계획을 반영했다. 2003년부터 안양천 하류를 조수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해 2007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받아들이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 "지자체가 협의체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듯이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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