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추웠던 곳은 시베리아가 아니라 몽골의 고비사막이었다. 자고 나면 텐트 속 수통의 물이 얼어 있었다. 8일 간 나침반에 의지하며 자전거를 타고 약 430㎞의 이 메마른 땅을 지났다. 반대로 제일 더웠던 곳은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40도가 넘는 열기를 뚫고 동(東)에서 서(西)로 실크로드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
# 러시아의 한 산길을 내려오던 태관 씨가 자전거와 함께 굴렀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고 특히 팔꿈치가 찢어져 피가 멈추지 않았다. 로밍한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외딴 지역이었다. 인범 씨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휴대전화의 신호가 잡힐 때까지 달렸다. 다행히 15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보건소를 발견했다. 태관씨는 구급차로 후송돼 다섯 바늘을 꿰맸지만, 다시 자전거 핸들을 움켜쥐었다.
한국의 청년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야영을 하면서 8개월째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있다. 하루 평균 60㎞씩 달려 총 18개국, 1만8,000㎞를 300일 동안 여행하는 일정이다. 색다른 도전의 주인공들은 올해 2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태관(28)씨와 같은 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황인범(26)씨. 이 여행을 위해 김씨는 취업을, 황씨는 졸업을 각각 1년씩 미뤘다.
이들이 지금까지 달린 거리는 약 1만5,000㎞에 달한다. 지난 3월 27일 인천항에서 배에 자전거를 싣고 중국 톈진(天津)에 도착,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몽골을 거쳐 러시아의 시베리아를 지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차례로 통과했다. 이어서 그루지아와 터키를 지났고 동유럽의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거쳐 현재 헝가리를 통과하고 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나 오스트리아를 거쳐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통과해 최종 목적지인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3,000㎞를 더 달린 뒤 내년 1월 여행을 마칠 계획이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여행이 너무 좋고, 젊은 시절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들이 밝힌 여행 이유는 단순하지만 명쾌했다.
절친한 선후배이며 하숙집 룸메이트인 두 사람은 이번 여행을 위해 4개월간 준비했다. 가장 먼저 여행코스 잡기. 고교 지리부도의 4,000만분의 1 세계지도에서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한 뒤 상세 지도를 보면서 코스를 그려나갔다. 새로운 자전거 여행 루트를 개척한 셈이다.
다음은 경비 마련. 중고차와 야구글러브를 판 돈 300만원, 하숙집 보증금 50만원, 그리고 가족,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1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후원금을 받아 충당했다. "자전거로 이동하고 야영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생활비가 적게 들었어요."
지난 겨울 영하 18도의 강원도 산 속에서 야영하며 추위 적응훈련을 했고, 담력을 키우자며 공동묘지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했다. 자전거 분해조립을 100번 이상 반복해 손에 완전히 익혔다. 체력훈련도 빠뜨리지 않았다. 자전거의 트레일러(수레)에 싣고 다니는 야영장비와 식료품 등 짐 무게만 평균 40㎏에 달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우여곡절은 피할 수 없는 법. 헝가리에서는 이정표를 따라갔다가 잘못해서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경찰에게 딱지를 끊기도 했다. 고비사막에서도 고비가 있었다.
약 430km 구간을 이따금씩 지나는 차량들이 남긴 바퀴 자국과 나침반에 의존하며 통과하던 중 나침반 2개 중 하나가 고장이 났다. 하지만 둘은 태양의 위치를 가지고 고장 난 나침반을 잘 골라냈다.
심신이 지칠 때에는 자신들의 블로그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www.cyworld.com/tourbike)에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된다. 특히 황씨의 누나 황지혜(29)씨는 결혼 날짜까지 미루면서 동생의 열성 후원자 역할을 해주었다.
여행에서는 크고 작은 즐거움이 이어진다. 시베리아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이들의 도전에 감탄하며 격려금 100루블을 건넸다. 그는 또 "이걸 보이면 러시아에서는 무조건 통과"라며 자신의 제복의 부대 마크를 칼로 떼주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주민들은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이 특별한 여행객을 앞다퉈 집으로 초청, 며칠씩이나 극진히 대접했다. 몇 곳에서는 현지 TV, 신문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지구 곳곳에 땀방울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과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곳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의 연속입니다."(황인범). "페달질 하며 하루하루 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커가는 것을 느낍니다. 한번 도전해보세요. 힘들면 좀 천천히 달리면 됩니다."(김태관)
두 사람은 여행을 마친 뒤 다음 도전자들을 위해 여행경험을 책으로 펴내고, 자전거 여행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창업하는 꿈을 꾸고 있다.
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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