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밴더빌트 지음ㆍ김민주 등 옮김/김영사 발행ㆍ768쪽ㆍ2만9,000원
교통안전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1.9명당 1명이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운전은 성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 기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운전은 무려 1,500개 이상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뇌수술 전문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매일 하는 일 가운데 가장 복잡한 것이다. 운전자는 환경을 분석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위험성을 예측한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속도가 적절한지를 판단하면서도 라디오를 듣고 동승자와 대화한다.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기능을 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평상시에는 조심스럽고 친절하다가도 운전대만 잡으면 과감하고 난폭해지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가 1950년 만든 애니메이션 '모토마니아'에는 구피라는 개가 나온다.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소심한 구피지만 운전만 하면 180도 달라진다.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도로를 휘젓는다. 그러다가 차에서 내리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구피의 이중성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운전할 때 나타나는 인간의 이중적 태도를 재생할 뿐이다.
구피처럼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변하는 이유를 살핀 책이 <트래픽> 이다. 미국의 심리학, 과학 전문기자인 저자 톰 밴더빌트는 운전자의 심리와 습관을 통해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을 탐구한다. 트래픽>
저자는 운전이 사람을 돌변하게 만드는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든다. 타인과 대화하려면 얼굴을 마주보고 말을 주고받아야 하지만 차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경적을 울리거나 손짓을 할 수 있지만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자동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도 있다. 다른 차가 앞으로 들어오면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 경우 옆자리, 뒷자리의 동승자가 운전자처럼 흥분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자동차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익명성이다. 차 안에 있어서 익명성이 보장되면 규범을 잘 지킬 이유가 없다.
정체된 도로에서 운전자를 화나게 하는 것은, 내 차는 서있는데 옆 차는 쑥쑥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로를 바꾸고 다른 차를 추월해보지만 사실은 별 차이가 없다. 실험에 따르면 길이 막힌 도로에서는 나도 남을 추월하지만 남도 나를 추월해 도착 시간은 비슷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추월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이 추월한 차보다 자신을 추월한 차가 많다는 착각 때문이다. 또 다른 실험에 따르면 운전자는 앞쪽을 두 번 볼 때 옆을 한번 보는데 이는 다른 차가 내 차보다 먼저 가지나 않을까 의식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목적지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고속도로 최면' 혹은 '시간 차 경험'이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변화가 적은 도로 혹은 익숙한 장소를 운전할 때 주로 일어난다. 익숙한 길이 더 위험한 것이다. 눈의 움직임 등을 통한 실험 결과 5명 중 1명 꼴로 의식 없이 운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버지니아공대 교통연구소 등의 조사에 따르면 추돌 사고의 80%는 사고 발생 3초 전부터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지 않아 일어났다. 이런 사실들은 총체적인 기능인 운전을 사람들이 너무 쉽고 가볍게 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은 이 같은 운전 태도, 운전에 대한 심리 외에 운전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들려준다. 교통체증이 나날이 증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성의 외출 증가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난 것 말고도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등 집안 일을 여성이 주로 담당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시골 마을이든, 미국의 대도시든 전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출퇴근에 하루 평균 1.1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나, 군대개미가 분비물 페로몬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녀석과 먹이를 구해서 돌아오는 녀석이 페로몬 길에서 충돌하지는 않는다는 등 흥미로운 사실도 많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미묘하고도 복잡한 운전자의 심리학이다.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교통체계 혹은 교통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비합리적 성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한다. 그것을 통해 저자는 운전하는 인간에게 이성과 합리성을 촉구하고 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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