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동아시아출판인회의 '100권의 책' 선정/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 끊겼던 맥 다시 잇는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 '100권의 책' 선정/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 끊겼던 맥 다시 잇는다

입력
2009.10.30 08:43
0 0

동아시아의 독자들이 함께 읽게 될 현대의 고전 100권이 선정됐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인문출판사들의 협의체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29일 전북대에서 제9회 동아시아출판인대회를 열고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발표했다.

100권의 책은 각국의 선정위원회가 고른 근ㆍ현대의 대표적 인문 도서로 한ㆍ중ㆍ일 각 26권, 대만 15권, 홍콩 7권으로 구성됐다. 이 책들은 2010년 선정 경위와 개요를 담은 해제집 발간을 시작으로, 각국 정부의 번역 지원을 받아 출간될 예정이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2005년 결성,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대회 때부터 100권의 책 공동 출판 사업을 추진해 왔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근대 이전 동아시아는 한자를 기반으로 상당히 넓은 지적 교류를 해왔지만, 근대화와 냉전을 겪으며 그 교류가 끊어졌다. 현대 동아시아가 위치한 지적 기반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좋은 책을 읽는 일이 시급하다"고 사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언호 회장은 이날 대회 개회사에서 "책은 공유됨으로써 빛난다. 100권의 책 프로그램은 세계 출판계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줄 것"이라고 말했다.

100권의 책에 포함된 한국 도서 26권은 <백범일지>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국의학사> 등 3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1970년대 이후에 출간된 책이다.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동아시아출판인회의 저작권위원장)는 선정 기준에 대해 "1950~60년대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산업적 토대를 구축한 한국 출판계가 본격적 인문 단행본 출판을 시작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 밖에 ▦상업성보다 한국 사회에 지적ㆍ사회적 영향을 끼친 책 ▦한국적 특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책 ▦번역이 가능하고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책 등을 선정 기준으로 들었다.

한국의 경우 2008년 7월 이후 학자, 출판평론가, 출판사 대표 등이 참여한 선정위원회를 운영해 왔다. 한 교수는 "모두가 만족하는 목록은 불가능했다. 숱한 토론과 타협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며 선정 작업이 지난했음을 털어놨다.

한국 선정 도서에는 이밖에 <한국 음악사> <한국 근대 문예비평사 연구> <한국 수학사> <지눌의 선 사상> <한국 유학 사상론>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등 철학, 사회, 예술에 대한 현대의 저술이 다양하고 고르게 포함됐다.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은 김구(1876~1949)의 <백범일지> 이며, 가장 최근의 것은 2006년 출간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에세이 <풍경과 마음> 이다.

26권 가운데는 정치ㆍ사회적으로 진보적 관점에서 저술된 책도 눈에 띈다. 따라서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것을 놓고 논란도 예상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흔들리는 분단체제>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전쟁과 사회: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등이 목록에 포함됐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의 1970~80년대는 민주화를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포함된 책은 산업화ㆍ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책들이다. 오히려 사상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중국의 독자를 고려해 걸러낸 책도 있다"고 밝혔다.

중화권(중국, 대만, 홍콩)과 일본이 선정한 책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저술한 학술서와 고급 교양서가 주를 이뤘다. 일본의 류사와 다케시 전 헤이본사 대표편집국장은 "'동아시아의 독자들이 공유해야 할 책이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 선정 기준이었다"며 "목록에 포함된 책들은 근래 50년 동안 발간된, 일본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들"이라고 설명했다. 동슈위 전 중국출판집단 싼롄서점 총경리는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의 이유로) 학술서가 출판되지 못하던 시절이 있어서, 1980~90년대 이후 신진 학자들의 저작이 많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저작권ㆍ판권이 확보되는 책부터 순차적으로 100권의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출간 작업은 각국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표지 디자인이나 편집 등에서 통일성을 추구할 방침이다. 한성봉 동아시아출판사 대표는 "번역은 무척 힘들고 중요한 작업이라 언제 완간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출판인회의에 소속되지 않은 출판사에게도 발간의 기회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 출판사를 비롯한 비아시아권 출판계에서도 100권의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100권의 책은 계속되는 프로그램"이라며 "'동아시아의 소설들' '동아시아의 사회과학서들' 등 다른 이름과 형태로 사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동아시아 출판인대회 참석 인사들 좌담

동아시아출판인대회에 참석한 각국의 출판인들은 '동아시아 100권의 책'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 기대는 출판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직업적 바람이라기보다, 인문주의의 부활을 바라는 동지적 연대감에 가까웠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출판계의 대표적 인사들이 28일 밤 한 자리에 모여 나눈 대화를 간추려 소개한다.

▦김언호(한길사 대표ㆍ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 문화적 유산은 모든 인류가 공유할 때 의미가 있고, 책이라는 것은 본래 소통과 나눔의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 각국의 출판 행태는 소통보다는 구획을 짓고 소유하는 데 급급하다. '100권의 책' 공동 발행은 동아시아가 갖고 있는 정신을 넓은 차원에서 공유하자는 운동이다. 공격적 상업주의, 물신주의를 뼈대로 한 서양의 출판 문화에 대응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오츠카 노부카즈(전 이와나미서점 대표)= 일본의 출판인으로서 나는 여기 모인 다른 나라의 출판인들과 입장이 다르다. '100권의 책'은 동아시아 근ㆍ현대의 인문 서적이 대상인데, 근대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사상적 배경이 다르다. 또한 일본인은 이웃나라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100권의 책'은 일본 사회가 동아시아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동시에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슈위(전 중국출판집단 싼롄서점 총경리)= 이번 작업이 동아시아에 만연한 서양 중심적 사고를 탈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각국이 쌓아온 문화를 통해 서로로부터 배움을 받는 운동이 되길 기대한다. 또한 출판인으로서 인문서에 대해 새롭게 각성하고 새로운 전파 경로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찬만훙(홍콩출판총회 회장)= 역사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섯 나라'라는 말보다 '다섯 지역'이라는 말을 쓰자고 주장한다. 정보 교류의 과정, 또는 갈등 해소의 과정도 과거가 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그 공동체는 단절되고 붕괴했다. '100권의 책'은 그런 공동체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린린덴(대만 연경출판공사 발행인)= 지난 100년의 세월은 서로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채 지나쳐버린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서양 중심의 가치체계가 유통ㆍ소비됐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서양의 근대에 흡수되고 제압당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00권의 책'을 통한 소통은 그런 문제에 대한 근원적 반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현대의 정신적 문제의 대안을 동아시아 안에서 찾는 동력이 될 것이다.

전주=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