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곳곳에 시민을 위한 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상설 공연무대가 설치돼 있다. 인파가 많은 길거리는 물론 지하철역에도 무대가 있다. 그러나 실제 공연을 보기는 어렵다. 무대라고 해야 서너 명이 올라가면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울 만큼 볼품이 없다. 혼자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사람이나 1인극에 알맞은 장소처럼 보인다. 공연이 열리지도 않다 보니 상설무대는 오히려 흉물이 돼 가고, 무대 밑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는 쓰레기가 쌓인다.
앞 다투어 짓는 지방 문예회관
그런데 왜 이런 무대를 일률적으로 많이 만드는 것일까. 우리 지자체들은 웬 돈이 그렇게 많을까. 공연을 한다 해도 주변의 길이나 막히게 하고 별로 문화적 효과도 없는 소음으로 고통을 주는 일을 왜 자꾸 벌이는 것일까. 무대 주변을 지나칠 때마다 이런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세우고 있는 문예회관은 이런 '무대 확장심리'의 결정판이다.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문화예술회관의 최근 3년간 평균 가동률은 59.4%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어 놓고 놀리는 시설이 이처럼 많은데도 문예회관 건립경쟁은 지방도 비슷하다.
특히 내년 지자체 선거를 의식한 단체장들의 업적 과시용 사업이 많다. 이미 비슷한 시설이 인근에 있는데도 문예회관을 새로 짓는 경북의 한 지자체는 공기를 4개월 단축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완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지금 있는 시설도 1년에 겨우 60여일 공연을 하는 실정인데, 신축 회관이 잘 운영될는지 걱정스럽다.
문예회관 신ㆍ개축에 대한 국비 지원건수는 매년 10건 미만이었으나 지자체 선거 때문인지 올해에는 21건으로 늘었다. 그나마 국고 보조는 최대 20억원에 불과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지방채 발행으로 빚을 쌓아가고 있다. 전적으로 문예회관 때문은 아니겠지만 올해 전국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방채 총액은 4조4,000여 억원은 지난해(2조310억원)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더욱이 건물은 수백억원씩 들여 지어 놓고 연간 운영비는 1억원도 배정하지 못하니 공연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유치하는 것은 애초부터 연목구어(緣木求魚)인 셈이다. 지금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건립하는 문예회관은 월드컵경기장과 마찬가지로 사후 운영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각종 집회장이나 결혼등 모임장소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지금 한창 논의되고 있는 지자체 통폐합과 문예회관 운영의 문제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 개선책을 생각하며 두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충북 옥천군은 '500석 미만, 100억원 미만' 원칙을 정한 뒤 470석, 98억원에 지난해 문예회관 공사를 마치고, 공연 유치에 연간 3억원 가까운 예산을 쓰고 있다. 필요와 분수에 맞게 문예회관을 운영하는 셈이다.
지금 한창 뮤지컬 <남한산성> 을 공연 중인 성남아트센터는 2년 여 전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성남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인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답은 남한산성이었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문화적 콘텐츠로 구현하는가 고심하는 판에 김훈씨의 소설 <남한산성> 이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들어내게 됐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결국 성남문화재단은 공연장 운영이라는 기본업무 외에 그 지역의 문화유산이나 역사적 유물을 문화적 컨텐츠로 제작함으로써 문화재단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인데, 앞으로 남한산성을 더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매년 손질할 계획이다. 이미 지방 공연장의 초청도 잇따르고 있다.
건물보다 컨텐츠 개발이 중요
무조건 짓기만 하지 말고 인접한 대도시나 지자체와 공연장을 공유하는 방식도 검토해야 하겠고, 건축예산을 창작 지원으로 돌리고, 지역 예술단체의 참여를 유도해 주민들의 문화 향유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무대만 늘릴 게 아니라 무대에 올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문화의 달' 10월을 어수선하게 보내면서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임철순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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