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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유럽형인가 영미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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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유럽형인가 영미형인가

입력
2009.10.3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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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지향해야 될 경제사회 발전모델이 유럽형인가, 아니면 영미형인가 하는 논란이 10여 년 지속되고 있다. 제3의 길이 있다, 유럽도 자세히 보면 하나의 모델이 아니다는 등의 곁가지 논의도 중요하지만 일단 제쳐두자. 정작 유럽형, 영미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두 모델에 관한 논의도 피상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권리보장'과 '이해보장'

유럽형 전통은 흔히 우리 법이 대륙법 체계라고 말하듯이 우리 정치사회의 제도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 유럽 정치사회 모델의 핵심은 바로 권리(rights)의 보장이다. 누구나 동등한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가지고 있고 경제적 관계에서도 이런 권리의 존중과 보장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존중 받는 것도 약자 계층의 집단적 권리를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한 조정과 협의를 거치게끔 조성된 것도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영미형 전통은 이해(interests)의 보장을 중시한다. 당연히 사회적 이해의 상당수를 결정하는 시장질서의 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이해가 공정하게 대표되고 조정되는 것이 정치사회적 제도 운영의 목표가 된다. 노동조합도 공정성의 시험을 거쳐야 하고 중앙집권적이고 집단적인 사회제도는 개별적 이해관계를 왜곡하고 억압하기에 분권적, 개별적인 사회관계가 주축을 이룬다. 우리 아침뉴스에 뉴욕증시 상황이 중요하게 보도되듯이 영미형 모델은 매일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유럽형과 영미형의 혼합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잘 조율된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같은 설계방식으로 이루어진 전자적 혼합이 아니라, 압축적 발전 경험에서 수공업적으로 조합된 기계적 혼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조율체계가 미비하다 보니 조금만 기계적인 이상이 와도 엄청난 혼란과 갈등을 겪는 것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 경험이 정치사회적 권리의 확장을 가져다

주었다면, 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개방화 경험은 사회적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더 첨예화 되는 과정이었다. 이 두 가지 사회적 드라마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하나가 종결되지도 않은 채 현재도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한쪽에서는 권리 보장을, 다른 한쪽에서는 이익 보장을 들고 나온다. 때로는 권리상의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이익으로 타협한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업들은 사용자의 돈으로 대치적 입장에 서는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관계 대표상의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고, 노조는 실력으로 얻어낸 전임자 임금은 사회적 권리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상황이다 보니 제 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의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그런 길을 구체적으로 찾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원칙과 원칙이 부딪힐 때는 타협안이 나오기 힘들다.

제3의 길은 이념 아닌 균형

서로가 지향하는 목표, 출발한 지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새로운 관점이 나올 수 있다. 서로 편을 갈라 유럽형 모델, 영미형 모델의 장점만을 찾기 보다는 각자가 지향한 모델의 한계와 다른 이들이 지향하는 모델의 특징을 공부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사회에서 권리 보장이 취약한 분야에는 권리 보장을, 불공정한 이익 실현이 이루어지는 분야에는 공정한 이익 대표 원칙을 강화하자. 권리의 보장과 공정한 이익대표 간에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비정규직은 권리도 침해되고 이익도 불공정하게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권리와 이익의 동시적인 과잉실현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제3의 길은 이념이 아니고 균형이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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