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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hat's hot] 돈과 학벌이 지배하는 현실에 하이킥 날리는 통쾌한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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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hat's hot] 돈과 학벌이 지배하는 현실에 하이킥 날리는 통쾌한 시트콤

입력
2009.10.3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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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최다니엘)이 부부싸움 중인 누나 현경(오현경)에게 묻는다. "뭐해, 사랑?" 현경이 답한다. "사랑? 개뿔!" 다시 지훈이 그냥 서 있는 아버지 순재(이순재)에게 묻는다. "뭐하세요, 명상?" 순재가 답한다. "명상? 개뿔!"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은 그렇게 사랑도 명상도 '개뿔'이 된 시대의 시트콤이다. 그들은 사랑 대신 돈과 학벌에 지배당한다. 세경(신세경)과 신애(서신애) 자매는 아버지 빚 때문에 서울로 도망쳐 순재의 집에서 가정부로 살고, 정음(황정음)은 명품구두 값을 갚으려고 자신을 '서운대'가 아닌 '서울대'생으로 속이고 과외를 한다.

순재의 손녀 해리(진지희)가 신애에게 집안 모든 것을 "내 거"라고 하며 구박하는 것은 '소유냐 존재냐'가 아니라 '소유가 존재'가 된 세상의 축소판이다.

그러나 지붕킥의 인물들은 돈뿐만이 아니라 정도 원한다. 아내를 잃은 순재는 자옥(김자옥)의 사랑을, 가족 누구도 놀아주지 않는 해리는 관심을 원한다. 그들은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사랑을 원하며 희극과 비극이 얽힌 사건을 저지른다.

어리숙한 정음은 서운대라는 걸 안 들키려고 갖은 거짓말을 하며 괴로워하고, 자옥과 데이트 중 행인과 싸운 순재는 신분을 숨기려고 경찰에 가짜 이름을 댄다. 그러나 지붕킥은 사랑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방귀를 뀌는 순재처럼, 먹고 싸는 데 충실한 이 사람들을 비웃지만은 않는다. 현경과 자옥은 순재 때문에 앙숙이 됐지만 현경이 다리를 다친 자옥을 업어주며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지훈은 해리의 인형을 훔친 신애에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새 인형을 사준다.

작지만 따뜻한 소통, 약자에 대한 관용과 연민. 지붕킥은 돈과 권력의 시대를 보여주며 이를 극복할 '시대정신'을 제시한다. 그건 시청자들이 홍상수 영화에 어울릴 법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웃는 사이 구두쇠 스크루지마저 착하게 바꾸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교훈을 배우는 것과 같다.

SBS '순풍 산부인과'부터 꾸준히 한국의 현대 가족을 관찰한 김병욱 감독은 지붕킥에서 가족으로 시대를 성찰하는 데 이르렀다. 그리고 서울대 의대 출신인 지훈은 가정부인 세경과 서운대생인 정음 중 한 사람을 사랑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 지붕킥은 이 차디찬 현실에 어떤 답을 줄까. 그 답에 따라, 지붕킥은 단지 좋은 시트콤이 아니라 이 시대를 비춘 작품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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