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끝났다(It's game over to the competitors)."
22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노키아센터. 세계 각국에서 온 뉴스킨 회원 1만3,000여 명이 7,000여 석의 좌석을 빼곡하게 채우고도 모자라 센터 앞에 장사진을 친 가운데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트루먼 헌트가 선언한 말이다. 다국적 직접판매 회사 중 화장품 분야에서 가장 독보적인 성과를 자랑하는 뉴스킨에게 이번 행사는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인 동시에 창사 이래 처음 내년 1월 전 세계에서 동시 출시하는 안티에이징 신제품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였다.
헌트가 "뉴스킨의 미래가 달린 혁신적 제품"이라고 강조한 제품은 '에이지락(ageLOC)'. 지난 10년 간 과학계에서 진행된 인간게놈연구를 기반으로 젊을 때의 피부 상태를 인식하는 일련의 유전자 DNA를 활성화시키는 특수 성분을 개발, 적용했다는 제품이다.
화장품 업체들이 과학적 성과를 인용해 제품 개발에 나서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분보다는 화장품 제형의 안정화 기술에 초점을 맞췄던 1970년대를 시작으로 비타민C와 토코페롤의 미백 보습 기능이 발견돼 비타민크림 전성시대를 열었던 80년대, 알파 하이드록시 액시드(AHA)와 레티놀, 콜라겐과 엘라스틴 같은 기질단백질과 멜라닌 형성 효소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이 발전한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장품은 보톡스 등 피부과 기술을 접목하는 동시에 바이오 기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시작된 인간게놈연구는 화장품에도 '유전자지도를 응용하면 영원한 청춘이라는 인간의 욕망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 줬다.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유전자 화장품들이 그 결과물들이다.
뉴스킨이 내놓은 에이지락도 유전자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청춘 유전자군(群)'으로 해석되는'YGC(Youth Gene Cluster)'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켜 피부 스스로 젊은 상태를 계속 기억하고 유지할 수 있는 특수 바이오 기술이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브래지어 와이어에 적용되는 형상기억합금의 화장품 성분판쯤 되는 셈이다.
앞서 랑콤에서는 특정 유전자를 활성화해 젊은 피부를 만들어 내는 단백질의 합성을 촉진한다는 신제품'제니피끄'를 6월 출시했다. '유전자 에센스'라고 명명된 이 제품은 피부 젊음에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의 생성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 에스티로더는 흔히 '갈색병 에센스'로 불리는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컴플렉스'를 7월 리뉴얼 출시하면서 피부 세포 속에 존재하는 시계 유전자(Clock Genes)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해 위해 환경에 의한 피부 손상을 회복시켜 준다고 발표했다.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전자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다. 유전자 연구 자체가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을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하여 '동안의 욕망'조차 과학적으로 성취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매혹이 강할수록 화장품 업체들의 '사이언스 마케팅'도 탄력을 받는다. 안티에이징 화장품 시장은 올해 세계적으로 1,000억달러에 육박하며 노령 인구의 급증에 따라 향후 10년 간 연평균 8~10%대의 고도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황금 어장이다.
그러나 과학적 성과가 화장품을 통해 구현되는 데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7일 보건복지가족부는 랑콤의 제네피끄 등 일련의 화장품들이 효과를 과장했다는 이유로 과대광고금지처분을 내렸다. 제품 광고에 '유전자'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뉴스킨 역시 유전자라는 표현은 모든 제품 광고에서 금지된다. 다만 'YGC'라는 성분 표기는 가능하도록 허가됐다.
복지부의 조치는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모든 화장품의 성분 중 70% 이상이 물이고, 모든 기능성 화장품이 인증받기 위해 요구되는 기능성 성분이 전체 중량의 2%를 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유전자 활성 성분을 넣어 7~14일 안에 드라마틱한 안티에이징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희망 사항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화장품을 바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젊어 보이고픈 욕망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며 화장품 산업이란 어찌 보면 패션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이미지 산업이라는 점이다. 국내와 달리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에서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의 말은 곱씹을 만한 가치가 있다. "모든 화장품은 다 안티에이징 제품이다."
로스엔젤레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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