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일본 열도를 뒤흔든 사례를 말하면 흔히 한류와 스포츠 등을 거론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삼성전자다. 2006년 TV 부문에서 결코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SONY를 제치고 삼성이 글로벌 1위로 오른 것도 대사건이었지만, 일본 언론이 흥분했던 것은 이미 2년 전이었다. 삼성전자가 2004년 사상 최고인 영업이익 12조원, 순익 10조원을 넘기며 '순익 100억달러 클럽'을 했을 때였다. 멤버가 9개사인 이 클럽에서 제조업은 도요타와 삼성전자뿐이었으며 정보기술(IT)업체로는 삼성전자가 유일했다.
▦ 일본이 호들갑을 떨 만도 했다. 1969년 창립 첫 해 종업원 36명, 매출 3,700만원, 영업손실 700만원에 불과했고, 1974년 파산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후 81년 컬러TV용 색신호 집적회로를 개발했으나 삼성전자 스스로도 부끄럽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도약의 계기는 이병철 창업회장과 이건희 전 회장이 83년 초 사운을 걸고 시작한 대용량 메모리 반도체 개발이었다. 공장을 짓는 한편 일본 전문가에게서 기술을 배워가면서 그 해 11월 64KD 개발에 성공한 이후 92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업체가 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이자 역사였다.
▦ 4년 전 일본 언론이 분석한 내용이 흥미롭다. "최고 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신속한 결단력이 반도체 등에 대한 경영자원의 집중투자를 가능케 했고 이것이 경이로운 실적을 이끈 비결이다."이른바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론이다. '큰 그림-액션플랜-실행'은 각각의 역할이다.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도마에 올랐던 이 체제는 김용철씨의 비자금 폭로 파장에 휩쓸려 깨졌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성공신화는 좋든 싫든 이 구도의 역동성을 빼놓고 말하기 힘든다.
▦ 삼성전자가 내달 1일 불혹의 나이를 맞는다. 국내외 사업장을 합해 종업원 16만여명 매출 120조원대로, 전 세계에 생산 판매 연구개발 등 194곳의 거점을 가진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금융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해, 지금 70만원대인 주가가 조만간 100만원을 넘길 것이라는 증권사 보고서까지 나왔다. 반도체 LCD TV 모니터 등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품목도 12개에 이른다. 삼성전자 없는 한국은 이미 생각하기 힘든다. 그런데 이어갈 신화를 찾지 못한 탓인지 과거와 같은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삼성이 성숙하기 바란다면 그것을 보는 국민의 눈도 성숙할 필요가 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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