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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밭 우후죽순… 서부 민통선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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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밭 우후죽순… 서부 민통선 '신음'

입력
2009.10.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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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선 재두루미 한 쌍과 새끼 두 마리가 부지런히 부리를 놀려 떨어진 낟알을 쪼아먹고 있다. 들녘 위론 청둥오리 한 무리가 파란 하늘을 가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인근 야산은 붉고 노란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은은하게 풍긴다.

28일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자유로 끝자락 통일대교를 넘어 서부 민통선 안에 들어서자 한가로운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남쪽 5~20㎞ 구간의 민간인출입통제지역에 자리한 백연리는 천연기념물 203호이자 멸종위기종 2급인 재두루미의 최대 월동지로 꼽힌다.

재두루미들의 날갯짓을 따르던 시선 안으로 문득 낯선 광경이 들어왔다. 도로변 여기저기에 나붙은'임야불법개간행위금지' 플래카드와 논 사이 곳곳에 들어선 인삼 밭. 인삼 밭이 하도 많아 논에 인삼 밭이 끼어든 건지 인삼 밭에 논이 들어선 건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DMZ생태연구소 김승호 소장은 탄식처럼 말했다. "매년 130여마리의 재두루미가 찾아와 월동하던 곳인데 지난해에는 67마리로 줄었고, 올해는 10월 현재 42마리만 관측됐습니다. 인삼 밭 증가로 서식공간이 줄고 지형도 확 변해 찾아오질 않는 거죠."

현재 파주에선 400여 농가가 500여㏊에서 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외지인은 물론, 현지 농민들까지 인삼 경작에 앞다퉈 뛰어든 것은 땅이 비옥한데다 민간인 출입통제로 도둑 맞을 일도 적기 때문.

저지대, 습지, 산자락 등 생태환경이 우수한 지역에 무분별하게 확대되고 있는 인삼 밭은 지역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DMZ 남방한계선 부근 장단면 노상리에 자리한 2㎢ 규모의 신나무 군락지는 이미 절반이 인삼 밭에 잠식 당해 건강한 숲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오솔길 옆 지뢰철책이 제거되고 신나무를 잘라낸 자리에 50m 정도 길이 뚫렸다.

길의 종착점은 1만㎡ 넓이의 인삼 밭으로 주변엔 뿌리째 뽑힌 거목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김 소장은 "건강한 생태를 유지하던 신나무 군락이 이젠 섬처럼 군데군데 남아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민통선 내 진동면 하포리 허준 선생 묘 부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확인 지뢰지대를 표시하는 철조망이 뜯겨진 채 안쪽에 있던 나무들은 사정없이 잘려나갔다. 붉은배새매 꾀꼬리 등 희귀조류가 번식하던 곳이지만, 이제 새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군 관계자는 "사유지여도 지뢰지대를 훼손하거나 표식을 제거했다면 지뢰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불이행 때는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무차별 벌채와 개간에 대해 별다른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논밭은 면적이 5,000㎡ 이하면 소유주가 임의로 벌목해도 규제할 수 없는 법률 탓이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군 부대간 생태파괴에 대한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도 문제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민통선 내 43곳에 대해 생태조사를 하고 있으며, 생태가 우수한 것으로 파악된 지역이나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지를 자연환경보전법에 의한 법정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부 민통선 지역에는 노랑부리저어새와 재두루미 등 멸종위기 1급 8종과 2급 22종, 그리고 법적보호종 등 50여종의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지만, 최근 시민단체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개체수가 40% 정도 감소했다.

김 소장은 "멸종위기 동식물의 최후 서식지인 이곳마저 파괴된다면 생명체들은 한반도 내에서 갈 곳이 없어진다"면서 "DMZ와 생태 축을 이루는 민통선 지역의 훼손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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