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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교수와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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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교수와 축구

입력
2009.10.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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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물질성(Anti-corporeality)은 서구적 형이상학의 기초다. 그 것은 육체와 정신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것을 좀 더 중요한 현실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랜 동안 스포츠는 지식인들의 폄하와 경멸의 대상이 되어왔다. 움베르토 에코마저 축구 경기를 보는 행위에 성적인 관음증이라는 정신병적 낙인을 찍지 않았던가?

강진 바닷가의 승부

그렇다면 지난 주말 전라남도 강진에서 전국 23 개 대학의 교수 4백 여 명이 모여서 벌인 <전국대학교수축구대회> 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교수들도 이날만은 책이나 세미나 발표자료가 가득 담긴 노트북 컴퓨터 대신 형형색색으로 멋지게 디자인됐으나 당연히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무릎에는 투박한 정강이 보호대를 대고, 얼굴에는 독서용 안경 대신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축구용 고글을 쓰고 모인 이 온갖 종류의 박사들은 이틀 동안 예선 리그와 결승 토너먼트라는, 정확히 월드컵과 동일한 방식으로 축구대회를 벌였다.

경쟁은 아름다우나, 과정까지 완벽하게 아름답진 않았다. 저열한 몸싸움은 기본이고, 판정 불복에 진짜 싸움으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당한 선수들도 있었다. 경기장에서는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교육자적 정체성과 선수들을 연결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제됐다.

매 게임은 전ㆍ후반 15분씩 총 30분 경기였다. 11명의 팀원에는 50대 이상의 선수가 반드시 2명 이상 있어야 했다. 30 대 선수는 3명을 넘을 수 없었다. 당연히 주축은 40 대 선수들이었다. 모든 팀의 작전은 거의 동일했다. 수비 중심의 경기, 선취 득점을 올리면 거의 전원 수비, 15분의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승리의 비법은 상대 팀이 실수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승부는 누가 탁월한 플레이를 하느냐 보다는 누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지 않느냐에 의해 더 많이 가려졌다.

스트라이커보다는 골키퍼가 훨씬 중요한 포지션이었다. 가장 많은 골이 골키퍼가 평범한 공을 놓쳐서 만들어진 골이었다. 헛발질을 쉽게 하지 않는 최종 수비수를 가진 팀도 유력한 우승후보가 될 수 있었다. TV에서 보는 선수들을 흉내 내려고 하지 않는 데서 한국 교수들의 평균적 총명함은 입증되고 있었다.

흑산도에 유배된 형 정약전을 그리며 내려다보던 다산 정약용의 눈길이 자주 닿았을 어느 바닷가에 조성된 인조잔디 구장에 이 수많은 교수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사회의 반지성화로 보는 관점은 이들 대부분이 1년 중 대부분은 축구를 까맣게 잊고 지낸다는 의미에서 부당하다. 스포츠를 여가로 즐긴다는 의미에서 중산층화의 징표로 보기에도 축구는 골프에 비해 아주 저렴한 운동이다.

눈부신 헤딩 격돌

신은 사람에게 뇌 용량보다 큰 근육의 양을 주었다. 그것을 사용하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는 교수들에게도 여전히 있다. 또한 주로 독서와 연구라는 혼자서 할 수 밖에 없는, 외로운 직업을 가진 교수들에게는 집단적 대의를 위한 참여와 희생, 협동의 가치들에 빠져보고 싶은 것도 동기가 된다.

한스 굼브레히트가 말하는 '에피파니'(epiphany), 즉 신체의 어떤 움직임이 예기치 않은 공간에 짧게 등장했다, 재빨리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면서 만들어낸 갑작스런 아름다움은 전문적 선수가 아니라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수비수의 한 명으로 참가했던 필자의 눈앞에서 헤딩을 위해 뛰어오르던 배 나온 수학자와 대머리 철학자의 짧은 부딪힘은 그 어떤 것보다도 눈부신 것이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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