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정 성공보다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 아닌가. 왜 인생을 도박처럼 생각하나.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에 갔다 살아오면 그게 바로 성공이야."
지난 25일 홍콩 이튼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산악연맹(UAAA)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된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귀국 후 여성 산악인들과 함께한 모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2006년 여성으로는 다섯 번째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으나 하산 중 조난사고를 당해 손가락을 잃은 여성 산악인 곽지혜씨의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1969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동계훈련을 하다 18명의 산악인 중 10명이 목숨을 잃었던 조난사고의 당사자이기도 한 이 회장의 충고에 곽씨의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이 회장은 "아프고 힘든 경험이었겠지만 이제라도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가야 할 때야. 누구도 그 길은 알려주지 않아"라며 곽씨를 다독였다.
2005년 3월 순수 산악인 출신으로는 43년 만에 처음으로 대산련 회장에 취임한 그는 중견기업인 ㈜태인을 이끌고 있는 경영인이기도 하다. "인왕산 자락이 펼쳐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크고 자라며 산을 타는 재미를 어려서부터 알게 됐다"는 그는 지난 7월 아끼던 후배 여성 산악인인 고 고미영 대원의 죽음으로 또 한 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는 "우리 산악계가 지나치게 성과에만 집착하는 게 아닌 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며 "등산 자체를 즐기고 이를 통해 인격을 완성해가는 '산악 문화'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94년 창설돼 현재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10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한 UAAA의 사무총장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배경미 대산련 국제교류 이사를 임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장은 "한국 산악계 최초의 영문 산악 전문지인 '코리안 알파인 뉴스(Korean Alpine News)'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배 이사와 호흡을 맞추며 아시아산악연맹 회원국들과의 활발한 문화교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으로서 그의 간절한 꿈은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의 아시안게임 종목 채택이다. 그는 "쉽지 않은 과제지만 높은 고지에서 아래를 쳐다보는 대신 산 아래서 정상을 올려다 보는 마음으로 2년간 열심히 뛰겠다"며 "2014년 인천 광역시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에서 꿈이 이뤄 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산악계의 대부'인 그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주한 네팔 명예영사로도 활동해왔으며, 오는 11월11일엔 '한국ㆍ네팔 친선협회의 회장에 취임한다. 그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네팔은 전 세계 산악인들의 고향"이라며 "네팔과의 문화교류에도 신경을 쓰겠다"고 덧붙였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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