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베스트셀러는 당대 대중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시대의 성감대를 건드리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말도 있지만, 최근에는 책 내용보다 출판사들의 마케팅에 베스트셀러가 좌우되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출판문화상이 제정된 1960년 이후 50년 간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어보고, '베스트셀러 만들기'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시대의 창, 베스트셀러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베스트셀러가 집계된 것은 대형서점 교보문고가 개장한 1981을 친다. 출판계에서는 그 이전에는, 1954년 7만부가량 팔린 정비석의 <자유부인> 을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보고 있다. 근대화ㆍ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에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계몽적인 문화비평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어령의 <지성의 오솔길> (1960)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에는 진학률이 급증하면서 '한글세대' 작가인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1974),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 등 소설이 독서계를 강타했다. 난장이가> 별들의> 지성의> 자유부인>
군사정권이 이른바 '3S 정책'을 폈던 1980년대에는 김홍신의 <인간시장> (1982) 등 대중소설이 500만부 이상 팔리며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됐다. 서정윤의 <홀로서기> 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은 1987년 각각 베스트셀러 1, 2위를 차지하며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한국적 특이 현상을 입증하기도 했다. 1986년 에세이집 <우리를 영원케하는 것들> <그리운 말 한마디> 등 베스트셀러를 냈던 시인 유안진씨는 "무서운 시절이었고 좌절했던 사람들이 위로받고 싶었던 시대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리운> 우리를> 접시꽃> 홀로서기> 인간시장>
이념이 퇴조하고 세계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는 처세서나 어학서, 여행서가 인기를 끌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1995)이 대표적이다. IMF시대에는 김정현의 <아버지> (1997) 등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책이 독서대중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출판 유통구조의 변화, 자본 대형화로 대형 출판사들이 거액의 판권료를 지불한 번역서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쓸었다. 론다 번의 시크릿(2007),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 (2008) 등이다. 마지막> 아버지> 성공하는>
베스트셀러 만들기의 그늘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기획을 한 중소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서점이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중소 서점이 몰락했으며, 출판사들의 마케팅 경쟁이 격화된 2000년대에는 베스트셀러를 낼 수 있는 출판사가 미리 한정되는 출판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중됐다.
유망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보다는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몇몇 유명 필자에 의존하는 출판사들의 관행도 발목을 잡았다. 외국 서적에 대한 무분별한 선인세 경쟁도 가열됐다. 끊이지 않는 사재기 논란도 베스트셀러 신화의 그늘이다. 요즘도 베스트셀러 20위권에 드는 책 가운데 절반은 사재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출판계의 정설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등만 살아남도록 출판유통 구조가 변하면서 출판사들이 치킨게임 식으로 마케팅 비용에만 투자하게 된 것은 우려스럽다. 다양한 베스트셀러가 나올 가능성이 원천 봉쇄된 점은 출판계의 불행"이라고 말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지상주의, 몸집불리기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라며 "독자들이 다원화된 만큼 중소 규모 출판사들은 자신만의 특화 영역을 확보해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베스트셀러 뒷이야기
베스트셀러는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탄생하지만 호소력 있는 제목 하나, 출판영업자의 남모르는 정성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밀란 쿤데라를 국내에 알린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99)은 제목 덕을 톡톡히 봤다. 당시 이 책을 번역한 송동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원작 제목을 직역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제목 첫머리의 '존재'라는 말이 무겁다며 바꿀 것을 제안, 베스트셀러로 이어졌다. <소설 동의보감> (1990)은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의 혜안이 빛난 경우다. 출판사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상업성을 이유로 일부 젊은 편집자들은 이 책의 출간 자체를 반대했지만, 결국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돼 창비(전 창작과비평사)에 엄청난 효자 노릇을 했다. 소설> 참을>
시집 <홀로서기> (1987)에 얽힌 사연도 재미있다. 서정윤씨는 출간 전 "내 시가 유명하니 3만부는 찍어야 할 것"이라고 출판사에 공언했는데, 출판사는 그를 과대망竄?환자 취급하며 초판 2,000부만 찍었고 그 중 500부는 시인에게 떠넘겼다. 출판 후 책이 품절 사태를 빚자 출판사는 부랴부랴 서씨로부터 책을 되돌려 받아 팔았고, 이 시집은 한 달도 안돼 1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홀로서기>
1980년대초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이규형씨의 <배짱으로 삽시다> (1982)는 출판사 영업담당자의 남모른 노력이 깃들인 책. 사진찍기가 취미였던 이 영업자가 대형서점 직원들의 야유회에 가 직원들의 사진을 일일이 찍어주었는데, 그 사진을 마음에 들어한 서점 직원들의 구전 홍보로 초기부터 바람몰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 시절은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베스트셀러를 움직일 수 있었던 인간적인 시대였던 셈이다. 배짱으로>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역대 수상자 인터뷰/ 저작상·번역상 잇달아 받은 김호동 교수
약 1,000년 전 중세 유럽인들은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기독교 왕국이 동방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십자군전쟁에서 무슬림과 힘겹게 맞서고 있던 당시 유럽인들은 요한이 군대를 보내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방의 기독교 왕국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사막, 인도와 중국 등지에 기독교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김호동(55)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에게 2002년 제43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안긴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 (까치 발행)은 중세 아시아에 기독교도가 있었다는 내용을 다뤄 큰 주목을 받았다. 흔히 기독교는 유럽의 식민지 건설 혹은 해외 진출에 맞춰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아시아에 전해졌다는 사실이 책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동방기독교와>
김 교수의 저서는 동방기독교의 존재를 소재로 한 한국 최초의 책으로 학계는 물론 기독교계와 일반 독자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딱딱하고 논쟁적일 수 있는 내용이어서, 교양인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구성과 문체에 신경을 쓴 것이죠."
동방기독교 즉 네스토리우스교는 서기 431년 이단으로 몰려 파문 당한 콘스탄티노플 총주교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이 아시아 내륙으로 이동, 현지화 과정을 거치며 생명력을 이어간 기독교의 일파다. 책은 신자들의 개종과 흑사병 확산 등으로 네스토리우스교가 소멸의 길로 들어선 14세기말까지 약 1,000년의 세월을 다룬다.
김 교수가 한국에서는 낯선 동방기독교에 대해 책을 쓴 것은 전공 공부의 산물이다. 국내 손꼽히는 중앙아시아 전문가인 그는 몽골제국 등 중앙아시아의 역사, 종교,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몽골제국 역사를 공부하던 도중 칭기즈칸 일족 가운데 네스토리우스교 신자가 많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중세 초원의 지배자와 기독교의 관계가 궁금했지요."
강한 호기심에 끌렸지만 자료가 부족했다. 한국의 기독교 인사들도 네스토리우스교 자체를 알지 못했고 외국에도 관련 서적이 별로 없었다. 김 교수는 다행히 2000년부터 교환교수로 가 있던 하버드대에서 자료를 제법 모을 수 있었고 그것으로 책을 쓸 수 있었다. "로마 가톨릭이 라틴어를 사용한 것처럼 네스토리우스교는 시리아어를 사용했습니다. 성경도 시리아어로 번역했고 예배도 시리아어로 보았지요. 텍스트를 읽기 위해 시리아어를 공부했는데 그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김 교수는 앞서 1994년 제35회 한국출판문화상에서는 <이슬람문명사> 로 번역상을 받아 두 차례나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라시드 앗딘의 <집사> ,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 고전을 비롯해 중요한 도서를 여럿 번역했다. 동방견문록> 집사> 이슬람문명사>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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