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의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투자가 연간 10조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데도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삼성이 연간 10조원에 못 미치는 R&D 투자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한 점을 감안하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 정부도 이 같은 국가 R&D 사업의 문제점을 인식, 민간기업들의 R&D 투자법을 배우고 나서는 등 R&D 시스템을 확 뜯어 고치기로 했다.
27일 지식경제부 및 삼성에 따르면 2002년 국가 R&D 사업 투자는 6조1,000억원으로 당시삼성의 R&D 투자 3조원의 2배에 달했다. 2008년에도 국가 R&D 투자는 11조1,000억원으로 처음 10조원을 돌파한 데 비해 삼성의 R&D 투자는 8조원에 머물렀다. 올해도 국가 R&D 투자는 12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이상 성장했다. 삼성은 올해의 경우 R&D 투자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항상 삼성보다 큰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국가 R&D 투자의 성과는 삼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실제로 삼성의 매출은 2003년 12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엔 191조1,000원으로 성장했다. 그 동안의 R&D 투자 성과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반면 국가 R&D 투자의 성과는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예전에는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이라든지 전전자교환기(TDX)의 경우처럼 가시적 성과가 더러 있었지만 최근엔 이렇다 할 내 놓을 만한 성과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등을 거치면서 국가 R&D 사업이 선택과 집중 보다는 주로 균형 발전 차원에서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지식경제부는 '소액다건'식의 지원방식에서 탈피, 큰 건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국가 R&D 시스템을 바꾼다는 방침이다. 특히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대형 과제와 원천기술 위주의 장기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식경제 R&D 시스템 혁신위원회'를 구성, 30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첫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혁신 방안 등을 논의한다.
특히 임형규 삼성전자 사장이 임채민 지경부 제1차관과 함께 공동 위원장을 맡아 주목된다.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지낸 임 사장은 현재 신사업 팀장으로, 삼성전자의 신수종 사업 발굴을 주도하고 있다. 인제대 총장을 지낸 성창모 효성종합기술원장과 김덕용 ㈜KMW 사장도 참여한다.
지경부는 또 해외 R&D 동향과 국가 R&D 시스템 혁신안에 대한 용역도 맡긴 상태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연말까지 용역결과와 혁신위 의견을 종합해, R&D 개혁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R&D 지원책이 대기업에게만 집중되면, 정작 R&D 여력이 부족해 도움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의 경우 국가의 지원을 받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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