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학력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KS(경기고ㆍ서울대)'출신이다. 업무 연관성도 비교적 뚜렷하다. 안 장관은 직함이 말해주듯 '대한민국 교육 수장'이고, 정 의원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위원이다.
공통 학력 분모와 업무의 밀접성만 놓고 보면 사회적 통념을 들이대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병만 형님, 두언 아우" 정도로(물론 사석에서), 굳이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도 그런 식의 친밀감은 견지하고 있을 거라는 얘기다.
이런 예단은 이미 지난 6월 쯤 멋지게 빗나갔던 기억이 있다. 곽승준 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밤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를 법제화하는 법안 추진을 느닷없이 던진 건 그렇다 치자. 재선인 짧은 정치경력의 정 의원은 당시 곽 위원장을 무색케 하는 강경 발언으로 안 장관을 공격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선 대놓고 교육수장을 코너로 몰았다. "공무원에 휘둘려 (안 장관이) 사교육대책을 자꾸 축소시키고 있다. 물러나는게 낫다."
밤10시 이후엔 학원 문을 아예 닫을 수 있도록 법령을 고치자는 자신의 요구를 안 장관이 묵살했다는 게 정 의원의 판단이었다.
이른바 '안병만-정두언의 1차 전쟁'은 숱한 논란과 구구한 억측, 때론 정치적 해석까지 곁들여지면서 묘한 파장을 불렀으나, 결과는 안 장관의 승리였다. 안 장관은 9월 개각에서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안 장관을 재신임했다. 곽 위원장과 정 의원을 축으로 한 여권의 융단폭격식 공격이 거셌으나, 대통령은 안 장관 편이었다. 당시 청와대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MB가 안 장관을 총애했다기 보다는 정 의원 등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고 전했다.
3개월여가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거짓말처럼 또 벌어지고 있다. 공격을 하는 사람도, 방어에 나선 사람도 똑 같다. 테이블에 올릴 메뉴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번엔 외국어고 폐지 문제다. 지난 6일 교과부 국감때 "사교육비 주범인 외고를 없앨 용의가 있느냐"는 말로 정 의원은 안 장관의 신경을 살짝 건드렸다. 일종의 기습공격이었던 셈이다. 안 장관은 "연말까지 외고 폐지가 가능한 지를 연구용역을 통해 검토해보겠다"는 말로 대응했다.
공교롭게도 정 의원의 매몰찬 공격도 국민 관심이 집중된 국감 기간 중에 이뤄졌다. "외고를 자율형사립고(자율고)로 바꿔야 한다"는 깜짝 발언으로 분위기를 타더니, 얼마 안가 특성화고로 전환케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정 의원은 안 장관에게 '백기 투항'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교육 대책 대결에서 한 번 판정패 했지만 물러서기는커녕 뒤집기를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 새까만 16년 후배의 공격에 대한 안 장관의 방어 방식은 1차 전쟁 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신중 접근론'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교과부가 외고 운영 개선 방안에 대한 결론을 당장 내리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그럴 경우 잃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을 하는 듯 하다.
실세 장관 축에 끼는 각료와 한때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의원 간의 '사교육 2차 전쟁'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심판을 맡을 것인가.
김진각 교육전문기자ㆍ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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