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이면 베트남 영화가 국내 극장에 처음으로 개봉된다. 후인 루 감독의 <하얀 아오자이> 라는 영화다. 이전에 베트남 출신 트란안홍 감독의 유명한 <그린파파야 향기> <씨클로> 가 있었고, 지금 상영 중인 이병헌 주연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 도 그의 작품이지만, 베트남 사람 누구도 그것을 '베트남 영화'로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미국영화로 생각한다. 인도 사람들이 <슬럼독 밀리어네어> 를 자국영화로 여기지 않듯이. 슬럼독> 나는> 씨클로> 그린파파야> 하얀>
첫선 보이는 순수 베트남영화
<하얀 아오자이> 는 다르다. 순수 베트남 자본과 인력과 기술로 만든 상업영화다. 2007년 베트남 전역에서 개봉돼 역대 흥행 10위인 50만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하얀 아오자이> 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베트남 영화를 처음 소개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해 관객상까지 받았다. 우리의 흰 저고리와 같은 아오자이가 상징하는 가난과 아픔의 역사, 아름답고 눈물겨운 모성과 가족사랑, 예상을 뛰어넘는 완성도에 관객들은 감동했다. 하얀> 하얀>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베트남 영화가 한국에서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베트남영화를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소망, <하얀 아오자이> 를 한국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이루게 해준 사람은'좋은 친구들'이란 작은 영화사를 운영하는 김태형 대표다. 그는 2002년 처음으로 베트남에 멀티플렉스(다이아몬드시네마)를 진출시켰고, 한국영화를 처음 베트남에 소개했고, 2007년에는 최초 한ㆍ베트남 합작영화인 <므이> 를 제작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므이> 하얀>
영화 배급으로 맺어진 <하얀 아오자이> 의 제작자와의 인연 때문에 그는 한국 개봉을 덜컥 약속했다. 그러나"전국 40여 개 스크린을 통해 베트남 영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제작자의 희망을 이뤄주기란 쉽지 않았다. 극장마다 대뜸"누가 베트남 영화 보느냐"는 말부터 했다. 그나마 절반 정도인 25개 스크린을 잡는 데 2년이 걸렸고, 롯데시네마의 도움이 컸다. 하얀>
한국영화가 베트남에 진출한 지 7년. 이제야 비로소 거꾸로 베트남 영화의 한국 상영도 이뤄지게 됐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흥행 부담이 있는 베트남 영화를 개봉하려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우리도 이제 베트남 영화를 봐야 한다. 그들이 한국문화를 받아들이듯, 한국인들도 베트남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길 원한다. 쌍방향 교류 없이는 한류도 없다."
그는 또 다른 작은 봉사를 생각하고 있다. 극장 상영이 끝나고, 농촌의 가을걷이도 끝나고 나면, 전국 10여 곳을 돌며 <하얀 아오자이> 를 무료, 또는 실비로 상영할 계획이다. 2만1,150명의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나라로 시집왔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고국의 문화, 엄마 나라의 문화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얀>
우리사회를 일컬어 '다문화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말 뿐이다. 정부나 민간에서 내놓는 대부분의 다문화사회를 위한 정책이나 지원, 복지프로그램은 여전히 다양한 문화의 공존, 이해보다는 한국문화로의 일방적 동화와 통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결혼, 노동 이주민들이 하루빨리 자신들의 문화를 버리고 한국문화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차라리 다민족사회라고 하는 것이 맞다.
'문화'가 있는 다문화사회를
일방적인 문화적 동화는 다문화사회로 가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사람은 받아들이지만 당신들의 문화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공존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 버리고 우리 것을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그들로 하여금 문화적 상실을 강요한다. 그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이윤범 청운대 베트남 학과 교수의 말처럼 "그보다는 그들 문화와 우리 문화의 공유점을 찾아내고, 우리와 다른 또 하나의 문화와 정서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다문화사회이며, 미래의 국가경쟁력일 것"이다.
<하얀 아오자이> 는 왜 베트남 사람들이 한류에 열광하는지 말해 준다. 그래도 베트남 영화니까 뻔하다고? 이미 순수 인도영화 <블랙> 으로 그런 어리석은 편견이 한 번 깨지지 않았던가. 블랙> 하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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