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플루 대응지침을 바꿔도,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해도 혼란은 진정되지 않았다.
여전히 거점병원에만 환자가 몰려 제대로 진료가 이뤄지지 않았고, 의원급 의료기관의 환자기피도 심각했다. 한마디로 정부 지침이 현장에서 먹혀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치료거점병원인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는 27일 오후에도 40여명의 환자가 기약도 없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엔 담요에 둘둘 싸여 엄마품에 안겨있는 영아도 있었다.
중구 저동의 백병원에도 오후 2시 현재 100명이 넘는 환자가 진료를 받았으며, '마스크'의 행렬은 30명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백병원은 하루 200명 가까운 환자가 몰려 시설팀 직원들이 부랴부랴 진료소 옆에 컨테이너를 설치, 환자 대기실을 만들 정도였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이 갑자기 열이 올라 병원을 찾았다는 정진풍(39)씨는 "간이검사를 받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며 "이렇게 환자가 많으면 주민자치센터에라도 진료소를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딸과 함께 병원에 온 박성현(28ㆍ여씨)도 "2시간이나 기다려 겨우 진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5세 딸을 데리고 이대목동병원을 찾은 황희진(26)씨는 "집 근처 거점병원에 갔더니 7세 이하는 검사하지 않는다며 지정해준 소아과로 가 약식검사를 받은 후 다시 이 병원으로 왔다"면서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중증환자가 아닌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도록 26일 재차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원급 병원들은 여전히 환자들을 거점병원으로 보내고 있다.
목동에서 내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전문의는 "타미플루를 처방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확진검사 없이 어떻게 임상적 판단만으로 그 근거를 댈 수 있냐"며 "정부가 주먹구구식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남동의 한 의원급 병원 원장도 "병원에 검진장비가 없어 환자들을 인근 거점병원으로 보내고 있다"며 "정부가 개인병원도 타미플루를 처방하도록 했다는데 어떤 지침도, 공문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확진검사를 권하는 의사들도 여전히 많았다. 모세기관지염으로 생후 4개월 된 아들과 함께 한 거점병원을 찾은 정금주(31ㆍ여)씨는 "의사가 아이를 진료하면서 열이 놓으니 신종플루 확진검사를 받으라고 했다"며 "검사비 13만원에 약값까지 16만원이나 들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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