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지구 멸망설이 인터넷을 타고 번지면서 전 세계에 집단적 히스테리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3,600년 주기로 공전하는 니비루 행성(플래닛 X)이 2012년 지구와 충돌한다는 인터넷 루머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기원전 311년 8월 시작한 마야 달력이 기원 후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는 사실이 보태져 멸망설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다음달 개봉되는 헐리우드 재난 영화 '2012'까지 멸망설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멸망설이 부추기는 지구적 히스테리
15일 열기구를 띄워놓고 6세 아들이 타고 있다고 사기극을 벌였던 미국인 남성은 "언론의 관심을 끌어 리얼리티쇼에 출연, 큰 돈을 벌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가 갑자기 큰 돈을 필요로 한 이유다. 그는 2012년 지구 멸망에 대비해 태양 폭발 후에도 안전한 지하벙커를 지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인 데이비드 모리슨은 최근 멸망에 대해 문의하는 이메일을 무려 1,000여 통이나 받았다. 절반 이상은 10대 청소년이 보낸 것으로 "눈 앞에서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자살을 택하겠다"는 내용도 많았다.
소위 생존 전략을 안내한다는 인터넷 사이트도 수 없이 생겨나 충돌 준비물을 판매하고 있다. 휴대용 식수 정화 장치, 가스 마스크, 태양열 발전기 그리고 대기층 파괴에 대비한 자외선 차단 담요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생존법 관련 서적은 미국에서만 200종이 넘는다.
미디어의 상업성과 인터넷의 루머 복제가 만들어낸 멸망설
2012년 멸망설을 둘러싼 이 같은 소동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사이비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예전 루머와 달리 이번에는 지극히 상업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플로리다 대학 인류학과 수전 길레스피 교수도 "미디어와 마야의 유산을 이용, 뜻을 이루려는 자들이 만든 현대적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소니픽처스에서 내달 개봉하는 재난 영화 '2012'의 마케팅 전략에서도 멸망설의 상업적 속성이 드러난다. 마케팅을 위해 인류보존연구소라는 유령 단체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멸망 관련 루머를 생산해내기까지 한다. 한 순간에 거짓을 진실인양 둔갑시키는 인터넷 속성을 이용한 바이러스 마케팅이다. 이 홈페이지에는 1978년 설립된 이 연구소 관계자들이 지구가 2012년 멸망할 가능성이 94%에 이른다고 예측했다는 등의 거짓 사실이 올라와 있다.
그래서 최근의 소동은 뉴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무렵 종말론을 연상시킨다.
비이성적 소동에 대한 과학계의 우려
평소 종말론에 무관심하던 과학계는 최근의 비이성적 소동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 천문대는 15일 성명을 통해 "지구에 다가오는 행성은 없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NASA의 데이비드 모리슨 박사는 멸망설을 이용하는 상업 세력의 비윤리성을 비판하는 대표적 과학자다. 그는 한 기고문에서 "뉴에이지 시대의 신비주의와 헐리우드의 기회주의가 만난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메소아메리카 연구 진흥재단의 샌드라 노블 부소장도 "마야인에게 달력이 끝나는 시점은 한 주기가 끝나는 크게 축하하는 날"이라며 "특정 날짜를 멸망일로 정한 것은 돈벌이 기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최지향기자 jhchoi@hk.co.kr
■ 진짜 멸망 전에는 끝나지 않을…
지구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구약ㆍ신약성서 등 종교적 예언부터 해일, 화산폭발, 행성충돌 등 재해, 전쟁, 핵폭발 등의 인위적 멸망설까지 무궁무진하다. 소재면으로 보면 시대에 맞춰 진화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012년 지구멸망설에 앞서 가장 큰 위기설로는 Y2K 사건을 들 수 있다. 2000년 새해가 되면 컴퓨터의 숫자 인식오류가 생겨 통신망이 마비되고 잘못하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이었다. 이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시기 각종 멸망설까지 더해져 불안감을 키웠으나 결국 희대의 코미디로 막을 내렸다.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 멸망설은 세기말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1991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전쟁은 지구종말을 초래할 3차대전 발발설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지구멸망 관련 저자들은 이라크가 고대 바빌론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라크 전쟁이 지구종말을 가져올 것"으로 보기도 했다.
특히 2차 이라크 전쟁의 기폭제가 된 2001년 9ㆍ11테러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그의 예언이 '애초 1999년이 아니라 2012년이었다'는 진행형으로 변해있다.
1992년 우리나라에서 종말론을 신봉하는 교회에서 벌인 휴거 소동도 대표적인 사례다. 그 해 10월 28일을 세계 종말의 날로 규정하고 예수의 공중 재림 때 자신들도 같이 허공으로 올라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지만 가족, 직장을 버리고 합류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지구종말 예언은 인류 시초부터 있었다. 구약성서의 다니엘 예언이나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등은 지금의 인간세계가 파멸에 이르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고 봤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나, 페스트, 에이즈, 심지어 최근 신종인플루엔자 등 새로운 질병이 나타날 때도 지구멸망설이 고개를 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인류가 2012년을 잘 넘기더라도 지구멸망설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7년 5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태양 주변을 도는 소행성(2004MN4)이 2036년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충돌 확률은 4만5,000분의 1로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다. 앞서 BBC는 2003년 과학자 아이작 뉴튼이 성서 연구를 통해 2060년 지구가 멸망할 것으로 봤다고 보도했다. 2012년이 지나면 2036년, 그래도 멸망하지 않으면 2060년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 '행성X' '마야 달력 종말론' 진짜일까
2012년 지구 종말설의 주요 근거는 2012년 지구와 충돌하는 행성(Planet) X가 존재하며 마야 문명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는 것이다.
우선 과학자들은 행성X 설이 가당치 않다고 일축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전세계에 10만명의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있다며 특정 행성이 지구로 접근하고 있다면 당연히 알아채게 돼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미 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해 각국의 천문연구기관 등에서는 항상 소행성 등 지구 접근체들을 연구하고 있다. NASA의 수석연구원인 데이비드 모리슨에 따르면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직경이 2마일 이상인 모든 지구 접근체에 대한 '지도'를 완성했는데 당장 지구에 위협이 되는 접근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2029, 2036, 2068년에 지구에 접근하는 아포피스(Apophis)라는 소행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 아포피스는 1만8,000마일(약 2만8,900km) 이상 지구를 빗겨갈 것으로 계산됐다. 최장 길이도 축구장 너비의 2.5배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마야 달력에 근거한 종말론은 어떨까. 포츠마우스 대학의 천문학자 카렌 마스터스는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 마야 달력에 대한 오해를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현재의 달력과 시간이 1일, 1주, 한달, 1년 등 여러 주기로 나누어져 있듯이, 마야 달력도 그렇다는 것이다. 마야 달력은 56년을 주기로 매일매일에 여러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 특정한 이름이 주어져 있다. 현재로 치면 '7년 마다 오는 1월 첫 번째 월요일'이라는 식이다.
마야인은 5,126년에 이르는 달력을 만들었는데, 마스터스가 마야 달력의 기본 개념을 토대로 계산한 결과 2012년 12월 21일은 우리 달력의 '1999년 12월 31일'이나 자동차 주행기록의 '99999.99마일'처럼 계산상의 주기가 끝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야인이 적용한 방정식 틀에 따라 한차례 계산이 끝나고, 다음 계산으로 나아가는 시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야인들은 2012년 12월 21일을 종말이라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 같은 반박을 뒷받침해 준다.
이외에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새로운 예언, 주가예측 프로그램 '웹봇'등이 2012년 종말을 암시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있으나 이는 과학적 접근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과학적 반박 또한 어려운 주제들이어서 실체가 없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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