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이발 봉사를 해온 남정영(66) 대원이발기술학원 원장은 휴대전화가 없다. 그가 봉사를 나가 학원을 비우면 연락할 길이 막막해진다. 이런 '사랑의 출타'가 한 달에 열흘 가량이니 휴대전화 없는 불편이 적지 않으련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무료로 이발해준다고 해서 무시로 전화 받아가며 일하는 건 큰 실례지요."
20대 청년 시절부터 한결같이 마음을 다한 이웃사랑을 실천해온 남씨가 뜻깊은 선물을 받게 됐다. 서울시와 한국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2009 서울특별시 봉사상'의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 남씨를 포함해 올해 영예의 수상자로 선정된 19명, 2개 단체는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시상식 단상에 올라 1,100만 시민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는다.
남씨는 부인 김번희(63)씨와 영등포구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 1971년부터 이용학원 강사로 일하며 틈틈이 이발 봉사를 해왔다. 3년 뒤 종로구 창신동에 지금의 학원을 차리고 여유가 생기자 1983년 인근 낙산공원을 찾는 노인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봉사에 나섰다.
그동안 봉사 시간은 장장 4,880시간. 지금까지 낙산공원에서만 어르신 1,200여명을 맞았고, 2001년부터 외국인 노동자 6,000여명도 그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매달 한 번씩 이발 봉사를 위해 정기적으로 찾는 기관만 해도 13곳이고, 매일 오전 학원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노인도 하루 10명쯤 된다.
24일 남씨는 이발 도구가 든 검은색 가방을 들고 종로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았다. 이발용 의자 2개와 목욕시설이 갖춰진 10㎡(3평) 남짓한 공간에서 남씨는 다른 봉사자 4명과 함께 거동이 불편한 12명의 머리를 손질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한 사람 이발하는데 30분은 족히 걸렸다. 50년 경력의 남씨조차 "머리를 갑자기 비트는 경우가 많아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보통 사람보다 10배쯤 힘든 것 같다"며 긴장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이발은 물론, 면도에 목욕 봉사까지 받은 이들은 흐뭇해했다. 지난해 찾아든 뇌졸중 후유증으로 반신마비 상태인 최재호(53)씨는 "어머니께서 기력이 떨어져 수발 들기 힘들어 하시는데, 남 원장님이 매달 용모를 단정하게 해줘서 늘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발 봉사에 동참한 김광수(61)씨는 "회사에서 은퇴한 뒤 젊을 적 배운 이발 기술로 남을 도울 길을 찾다가 남 원장을 알게 됐다"며 "진정성을 갖고 봉사에 임하는 모습에 반해 3개월째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씨의 이웃사랑의 원천은 불우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다. 한국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고, 가난을 벗으려 열여섯에 고향인 충북 청주에 어머니만 남기고 상경했다. 옷 보따리와 오백원짜리 지폐 2장이 가진 전부였다. 2년간 종로 한약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당시 시내 유일의 이발 기술 교육기관인 '무궁화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갔다.
"밤낮없이 연습했습니다. 일요일엔 동네 꼬마들을 눈깔사탕으로 꾀어 학교로 데려가 머리를 깎았죠." 덕분에 1년 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따기도 전에 실습 조교에 강사 노릇까지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발사가 된 남씨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돈이 아니라 이가 득시글거리는 아이들의 머리였다. 남씨는 "전쟁 고아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고생해온 내 처지를 생각하며 군대 가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고아원을 찾아 머리를 깎고 감겨줬다"고 말했다. 이발 봉사뿐이 아니다. 그는 1991년부터 10년간 소년소녀가장 13명에게 연 2회 장학금을 줬고, 지금도 어린이 3명에게 매년 3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요즘도 봉사 요청이 들어오면 미련없이 학원 문을 닫고 나선다. 돈벌이에 뒷전인 남편에게 가끔 잔소리도 하지만 부인 김씨는 남씨를 든든히 후원하는 '숨은 봉사자'다. 김씨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가는 남편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30여년의 공덕은 남씨에게 뜻밖의 감동을 선사하곤 한다. 최근 그는 한 밤중에 10년 넘게 무료로 머리를 깎아준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 이발을 해줬다. 며칠 뒤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장남이 남씨를 보자마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는 "선생님이 이발을 끝내고 가신 뒤 아버지가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가시는 길에 깨끗이 몸단장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남씨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남씨는 "사람을 아름답게 해주는 이발사를 천직으로 삼은 덕에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성명 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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