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서 삼성토탈과 대만의 대표적인 석유화학기업 포모사가한판 붙었다. 삼성토탈이 이 지역 세탁기 제조공장 50여곳을 대상으로 주도하고 있던 세탁기용 폴리프로필렌(PP)시장에 포모사가 도전장을 낸 것. 포모사는 닝보에 연산 30만톤 규모의 PP 설비를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저가' 전략으로 치고 나왔다.
삼성토탈도 2007년 대산공장에 대규모 증설을 마무리한 뒤라 중국 시장을 빼앗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세탁기용 PP는 포모사에 양보하고, 대신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HIPP(고결정성 PP) 수출을 늘리며 시장을 옮겼다.
양안 경제통합땐 대만 관세 폐지 '가격장벽' 생길 판
중동기업까지 가세 '설상가상'… 제품 특화로 맞서야
우리 석유화학업계가 '제2의 내수시장'으로 꼽는 중국 시장이 심상치 않다. 차이완(중국+타이완) 발 '황사'와 중동 발 '모래바람' 예보가 한꺼번에 나오고 있다. 중동의 신증설 물량이 본격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하는데다 중국시장의 최대 라이벌인 대만은'경제통합'이라는 어드밴티지까지 앞세우게 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우리 업체들도 차이완 황사와 중동 모래바람에 맞서 정면 승부를 걸고 있다.
▦'제2의 내수시장'을 사수하라
중국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제2의 내수시장'이다. 지난해 우리 석유화학기업 수출의 46%가 중국에 집중됐다. LG화학의 경우 올 상반기 석유화학부문 매출(4조4,851억원)에서 66%가 수출에서 일어났는데, 그 중 약 60%를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내수시장과 중국 시장이 거의 맞먹는 구조가 우리 업계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올 들어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고 있는 것도 중국시장이 버텨줬기 때문. 중국에서 정부의 경기부양책 덕분에 석유화학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한국 제품에 대한 러브콜도 쏟아졌다. 올 상반기 PVC(폴리염화비닐) LDPE(저밀도폴리에틸렌)의 중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240%, 170% 증가했다.
중국 대륙에서 우리 기업들은 포모사, 치메이 등 대만 기업들과 팽팽한 경쟁 구도에 놓여있다. 고부가가치 기능성 제품으로 차별적인 시장을 형성한 일본과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저가제품을 공급하는 중동 사이의 틈새 시장이 격전지. 시장 점유율을 보면 한국제품이 PE, PP에서 포모사 등의 대만 기업들에 우위를 갖고 있고, 치메이가 세계1위를 하는 ABS와 PVC, PS에서 밀린다.
LG화학 관계자는 "대만과는 비슷한 제품 구조를 갖고 있어 대(對)중국 수출 뿐 아니라 현지 생산시설 투자에서도 경쟁 관계"라며 "제품 기술력과 가격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에 톤당 10~20달러의 가격 차이에도 승패가 갈릴 정도로 치열하다"고 말했다.
▦차이완發 악재 몰려온다
때문에 중국-대만 양안의 경제통합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에는 악재이다.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슷한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체결되면, 특히 가격에서 라이벌 대만에 불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가장 촉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은 관세 폐지 스케줄이다. 박래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석유화학이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장치산업의 특성과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외자 진출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면, ECFA가 추진될 경우 화학공업분야의 양안 협력은 관세인하 프로그램에 집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LG화학 관계자도 "한중FTA는 아직 갈 길이 먼데, ECFA 추진에 앞서 관세조기감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대만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서 관세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ABS PS PP PE PVC 등 합성수지 제품에 부과하고 있는 관세는 6~6.5%. 삼성토탈 관계자는 "관세가 폐지될 경우 대만 제품은 약 6%의 가격인하 효과가 생긴다"며 "대만 제품의 수입 단가가 톤 당 70달러 이상 떨어진다면, 한국에서 수출되는 제품은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도 ECFA 체결시 대표적인 수혜 산업으로 석유화학산업을 꼽았다. 석유화학부문의 연간 생산액이 14.6%(87억~92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관세 인하의 충격이 우려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기업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석유화학제품 중 약 60%는 가공무역시장(중국 안에서 전자제품 등으로 가공돼 제3국으로 재수출)으로 공급되고 있어, 대부분 관세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지화 전략으로 시장 차별화해야
차이완 황사에 맞서 우리 기업들이 추진하는 생존 전략은 대만과의 시장 타깃 차별화이다. 대만은 물론이고 중국, 중동기업들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특화된 제품을 중국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LG화학은 PE 수출 제품에서 현재 70%를 차지하는 프리미엄급 비중을 2012년 10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삼성토탈 관계자는 "엔드유저와 직거래를 강화함으로써 고객이 요구하는 특화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이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생산기지 진출을 통한 현지화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연간 10% 이상씩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은 현지 생산공장 투자에 나서고 있다. 운송비 등 생산비 절감도 크지만 특히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단축함으로써 현지 기업이 요구하는 제품을 시차 없이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지화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 LG화학·한화석화·삼성토탈 등 줄줄이 공장 착공 中진출 박차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중국 대륙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현지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대 시장을 우리의 확실한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에서다.
중국 대륙 진출에서 가장 앞서 나간 곳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중국 3대 석유화학업체 중 하나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합작으로 내년부터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시에 연산 30만톤 규모의 아크릴로니트릴부다디엔스타이렌(ABS)공장을 짓는다.
약 340만톤 규모의 중국 ABS시장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화남지역을 직접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이다. LG화학은 기존 중국 ABS생산법인인 LG용싱공장도 현재 58만톤에서 2012년 70만톤으로 증설할 계획. 중국에서만 100만톤 생산규모를 갖춤으로써, 세계 1위 대만 치메이와 경쟁에서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LG화학은 톈진(天津)에 고부가합성고무 스티렌부타디엔스티렌(SBS)를 생산할 현지 공장을 짓기 위해 중국 발천화공과 합작 계약도 맺었다. LG화학은 1995년 톈진에 폴리염화비닐(PVC) 생산법인 LG다구 설립을 시작으로, 현재 8개 생산법인과 1개 판매법인, 지주회사체제를 갖췄다.
한화석유화학도 지난 7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다셰 경제기술개발구에 2010년말 완공 목표로 연간 30만톤 생산규모의 PVC공장을 착공했다. 이 프로젝트로 한화석화의 PVC 생산능력은 54%나 확대된다. 한화석화는 PVC공장에 이어 PVC 원료 확보를 위해 비닐클로라이드모노머(VCM) 30만톤, 에틸렌디클로라이드(EDC) 50만톤 생산공장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한화석화 관계자는 "세계 PVC 수요의 27%를 점유하고 있는 최대 시장 중국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토탈과 금호석유화학도 중국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토탈은 9월 중국 둥관(東莞)에서 연산 2만8,000톤 규모의 자동차ㆍ가전 소재용 복합 폴리프로필렌(PP)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중국 진출 1호이자 첫 해외 생산법인이다. 금호석화는 최근 연산 2만2,000톤의 고무촉진제 생산공장과 10만톤 규모의 ABS컴파운딩 공장을 각각 장쑤(江蘇)성 쩐장(鎭江)과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에 추진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중국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건설을 타진하고 있다. 합성수지 등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뿐 아니라 그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하는 업스트림 부문까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중국 진출 폭이 넓어지고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