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입장을 다시 한번 총정리 했다. 그의 답변은 "어려운 시기를 지난 후 내년쯤 가서 금융감독체계 전반을 다시 논의하자"는 것. 기관별로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업무별로는 국내와 국제금융을 망라하는 감독체계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하자. 대신 종합적으로"라는 얘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 4월 한은법 문제로 시끌시끌했던 때도 그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 (국회가) 시간을 주면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이후 반년 동안 민간 전문가들의 자문까지 거쳤지만, 결국 결론은 또 한번 "다음에 하자. 종합적으로"로 내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음에 하면 될까.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연기' 논리 골자는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 '참고로 삼을 선진국들도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다'는 것.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진짜 속내는 '첨예한 기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우니 좀 더 지켜보자'에 가깝다. 실제 올 한 해 숱한 논의 과정에서 수없이 봐 왔듯, 이번 논란의 핵심은 '행여 개편 과정에서 내 권한이 줄어들지 않을지, 남의 권한이 나를 침범하지 않을지'에 대한 해당 기관들의 이해다툼이었다.
이는 금융위기가 끝나도, 다른 나라의 감독체계 개편이 방향을 잡아도 달라지지 않을 문제다. 설사 내년에 가서 논의를 다시 시작한들, '현행 체제로도 위기를 잘 넘기지 않았느냐' '다른 나라와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는 식의 반대논리가 등장할 게 뻔하다. 언제 하든 기관간의 이해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위기감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하는 것이 훨씬 낫다. "다음에 종합적으로 하자"는 말은 '안 하겠다'는 말, '골치 아프니 시간이라도 벌겠다'는 얘기와 달리 들리지를 않는다.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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