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인(大韓國人)'
100년 전 중국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감옥. 싸늘한 감방에 갇혔던 안중근 의사가 조국의 독립에 대한 견결한 마음을 담은 글을 쓴 뒤 반드시 붙였던 문구다. 감옥에서조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를 써 내려갔던 안 의사의 결기 속에 담겼던 정수는 '대한국인'이었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하루 앞둔 25일. 안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의 정신이 다시 살아났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뤼순 감옥 내에 안중근 의사 추모관을 비롯해 신채호, 이회영 등 이 감옥에 갇혔던 항일열사 12명의 흉상과 사료 등이 전시된 국제항일열사전시관이 공식 개관했다. 국내 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하는 기념관이 중국 현지에 세워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독립투사 유족 20여명과 국가보훈처, 광복회 관계자 등 90명은 열사들의 자취에 옷깃을 여미며 숙연해했다.
뤼순 감옥은 중국 랴오닝(遼寧)성 해상 관문 다롄에서 버스로 한 시간을 더 달려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한적한 소도시인 뤼순은 1905년 무렵 만주를 놓고 다투던 러시아와 일본의 병사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러일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
엄혹했던 옛 모습대로 뤼순 감옥은 쇠창살이 둘러쳐진 5m 높이의 붉은색 담벼락에 둘러싸여 100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1902년 러시아가 세웠던 뤼순 감옥은 일제가 러일전쟁 승리로 만주 땅을 확보하면서 2,000명까지 수용 가능한 규모로 증축한 뒤 주로 항일 애국열사들을 수용했던 곳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도 그 해 11월 3일 이곳으로 옮겨져 이듬해 3월 26일 이곳에서 처형됐다. 일제가 물러간 뒤 중국 정부는 뤼순 감옥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관리했지만 군사기밀 등을 이유로 지난해까지도 외국인에게는 개방하지 않았다.
감옥 문을 들어서자 붉은 벽돌로 세워진 감방이 좌우로 촘촘히 늘어서 있었다. 중국 당국은 아픈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고자 당시 수감자들이 입었던 죄수복이나 고문기구, 사형장 등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해 두고 있었다. 안 의사가 갇혔던 감방은 1층 수용소 한 가운데 있는 '간수부장 당직실' 바로 옆 독방이었다. 쇠창살 틈으로 보이는 방안에는 책상과 침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감옥 정문에서 오른편으로 15m 정도 떨어진 건물이 안 의사 추모관이다. 추모관 바로 옆에는 안 의사가 실제 처형을 당했던 사형장도 함께 복원돼 당시의 비극을 전하고 있었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된 교수대와 올무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추모관 바로 옆 건물은 국제항일열사전시관. 한글로 '여순감옥에서의 국제지사들'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전시관은 총 600㎡ 규모로 안 의사 등 독립투사 12명의 흉상과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 안 의사 기념실은 붓글씨와 사진 등으로 꾸며져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학산 윤윤기 선생의 딸인 윤종순(67) 여사는 전라도 광주에서 직접 가져온 화분을 안 의사 흉상 앞에 바쳤다. 윤 여사는 "안 의사 같은 분이 있었기에 항일 독립운동, 나아가 통일운동의 맥이 이어져 온 것"이라며 "자녀들이 준 생활비를 푼푼이 모아 자비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애국지사 유족들과 민족단체 관계자들은 중국 당국의 무성의한 조치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초 중국 측과 함께 치르기로 했던 개관식이 중국의 일방적 조치로 무산되고 말았기 때문. 광복회 관계자는 "기념관을 단장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1억5,000만원을 중국 측에 전달했으나 올해 초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결과적으로 중국이 적은 돈을 받게 되자 심기가 뒤틀린 것 같다"며 "열사들이 예전에 겪었던 고초를 다시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기념관 건립을 주도한 다롄대 유병호 교수는 "뤼순 감옥 안에 안 의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안 의사의 항일운동 업적이 국제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로서, 후손들이 더 많은 애착을 갖고 안 의사의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투사 유족들과 보훈처 관계자 등은 안 의사의 의거 현장인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로 이동해 26일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에서 재중동포들과 함께 의거 10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할 예정이다.
다롄=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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