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나미비아 정부 초청으로 그 나라의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나미비아는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식민지를 거쳐 1990년에야 독립한 신생국으로서 인구는 200만 명에 불과하나 국토면적은 남한의 8배에 달한다. 다이아몬드 등 광물 수출 덕에 1인 당 GDP는 3,500달러 수준으로 낮은 편이 아니나,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백인이 국토의 80%를 소유하는 등 빈부격차가 극심하여 대부분의 흑인들은 열악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가 공용어이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으며 치안도 안정돼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큰 나라다.
국익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
나미비아도 경제발전 계획이 있기는 하나 거의 모든 산업과 지역을 고루 발전시키자는 논조를 담고 있다. 인구 200만의 국가에서 이러한 전략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 선도산업을 선정하고 지역별로 차별화 된 발전전략을 제시했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에 나미비아의 전문가들과 공무원들은 크게 공감했다. 그러나 이를 집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투자 우선순위에서 떨어지는 산업과 지역에서는 이러한 '선택과 집중'을 극렬히 반대할 것이므로 정치인들이 받아 들이기 어려운 전략일 것이라고 했다.
나미비아의 대통령과 집권당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올 11월로 예정된 대선에서도 승리가 확실시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국력의 '선택과 집중'에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나미비아의 많은 전문가, 공무원들은 한국에서 온 보잘 것 없는 한 학자가 자국의 정치인들을 설득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순간 우리의 60~70년대를 떠올렸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하고 그 방향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열심히 뛰도록 동기를 부여한 결과였다. 우리는 산업간, 지역간 불균형 성장은 물론, 심지어 계층간 불균형 성장까지 추진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 따른 불만을 경제성장과 개발독재로 해결했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있는 정책도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돌파해 나갔다.
물론 박정희 식의 독재는 더 이상 우리나 나미비아에게나 필요하지 않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도출하고 여기에 국력을 결집하는 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은 박정희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요즘 국익 중심의 리더십이 가장 절실한 사안은 세종시 문제가 아닐까 한다. 30년 전 오늘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세종시 처리 방안을 물어 보면 무어라고 할까? 아마도 수도이전을 하라고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2월 "임시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안보문제와 수도권 인구집중을 이유로 들었다. 그 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고 후보지를 확정하는 등 준비가 진행되다 대통령 서거로 유야무야 됐다.
어정쩡한 '세종시 봉합'은 안돼
최근 세종시 원안의 수정안으로 2~3개 부처를 이전하는 계획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전 부처 수를 축소하여 비효율을 줄이는 동시에 충청권의 체면을 살려 주자는 취지인 듯하다. 세종시에 부처 2~3개를 보내야 그 효과는 미미할 게 자명하다. 정부는 먼저 아예 수도를 이전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부처 이전을 백지화 하고 민간 중심의 녹색성장도시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어정쩡한 방안으로 봉합하려 하지 말고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종시 문제를 이제 공식적인 논의의 장에 올려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이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정치적 이해득실 보다 국익을 우선시해야 한다. 나미비아나 우리나 국익을 우선하는 민주적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ㆍ미래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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