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지도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점은 선으로, 또 면으로 뻗어 갈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을 지녔다. 하나의 점, 즉 하나의 섬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양안의 대단위 경제통합 실험이 중국 푸젠(福建)성 동남단의 섬 핑탄다오(平潭島)에서 시작되고 있다.
25일 푸젠성의 성도 푸저우(福州)에서 자동차로 2시간, 다시 배로 갈아타고 30분이 걸려 도달한 핑탄다오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동쪽으로 대만 해협과 서쪽으로 하이탄(海) 해협으로 둘러싸인 이 섬은 대만과 거리가 가장 가깝고 면적은 싱가포르의 절반크기인 271㎢에 달한다.
이곳이 중국과 대만 양안간 경제합작을 위한 시범지구로 최근 선정되면서 섬 전체가 개발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푸젠성은 이 섬을 우선적으로 양안의 특수관세지역으로 개발하기 위해 각종 인프라 공사를 진행 중이다.
섬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섬과 육지 끝인 베이칭위(北靑嶼)를 연결하기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건설중인 핑탄해협대교가 우선 눈에 띈다. 총길이 5km인 이 대교는 내년 10월 완공예정으로 11억3,900억위안이 투자되고 있다.
이 대교는 푸저우~핑탄다오를 잇는 위핑(漁平)고속도로를 완성시켜 그만큼 대만 기업들의 중국대륙 진입을 빠르게 할 수 있다. 핑탄다오는 앞으로 중국과 대만 양안의 자유무역 및 대형물류기지로 중점 개발된다. 특히 이 지역에는 중국과 대만기업들의 IT 등 첨단기술 합작구가 들어서고, 문화ㆍ국제관광 합작구 등도 조성될 계획이다.
핑탄다오는 최근 위안화를 보유외환으로 매입할 것을 검토중인 대만과 금융ㆍ무역에서 자유거래를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자유항으로 성장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세우고 있다.
결국 중국과 대만 이른바 '차이완(차이나+타이완)'의 첫 번째 경제협력 모델도시가 되는 셈이다. 대만기업들의 이곳에 대한 투자 관심과 의욕은 대단하다.
청수밍(成蘇明) 핑탄현 상무위원회 부장은 "최근 대만기업들은 물론 싱가포르 등 동남아 화교권 기업인들의 현지투자검토를 위한 시찰단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며 "이들은 핑탄다오를 출발점으로 해서 결국 서부내륙 등 중국시장 전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마련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핑탄다오는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 중에 있는 푸젠성 중심의'하이샤(海峽)시안(西岸)경제구' 개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이샤시안 경제구는 중국과 대만 양안간의 경제통합을 가속화하고 대만을 포함해 푸젠성 전역을 '세계의 공장'인 광둥(廣東)성의 주장삼각 경제권을 능가하는 새로운 중국남부의 성장동력으로 만들려는 중국의 야심찬 또 하나의 경제개발 프로젝트다.
최근 중국 국무원은 대만과의 경제통합과 하이샤시안 경제구 육성을 위해 자동차와 IT, 조선, 석유화학 등 10대 산업에 3년간 5,000억위안(약 90조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 10대산업이 모두 우리나라의 수출효자 종목과 서로 겹치고 있다는 것이다. 푸젠성 정부는 자동차의 경우 중국과 대만의 합작기업인 동난치츠(東南汽車) 등이 위치한 푸저우와 샤먼(廈門)에 공단을 조성하고 싼밍(三明) 등 4개지역에는 특장차 및 자동차부품 기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환경보호설비 등 장비제조업을 육성하고 섬유산업 발전을 위해 5개 공단을 조성키로 했다. 한마디로 푸젠성 전역에는 중국의 자본ㆍ인력ㆍ시장에다 대만의 기술력을 결합한 '차이완 패러다임'의 새로운 산업구조가 들어서고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그 경쟁대상이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다. 광둥성이 2020년 한국의 경제규모를 따라잡겠다고 공언하고 있듯 푸젠성 역시 한국경제의 또 다른 도전자로 급성장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린융젠(林永健) 후젠성 발전연구중심 처장은 "푸젠성의 주요산업 육성을 위해 양안 기업간의 인수합병을 적극 유도, 연간 매출이 100억위안(1조8,0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을 20개 육성할 계획"이라며 "대만기업들로서는 금융위기 이후 위축된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중국기업들로서는 대만의 경험을 받아들여 그 시너지 효과를 배가 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내년 5월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과 대만 양안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과 맞물려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 인터뷰/ 좡푸츠 대만투자기업협회 회장
"내년초 중국과 대만 양안의 경제협력기본협정 (ECFA)이 체결될 경우 푸젠(福建)성을 중심으로 한 만여 대만 현지투자기업들의 중국내수시장 공략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다. 대만기업들로서는 여러 산업분야에서 항상 치열하게 경쟁해온 한국기업들을 중국시장에서 확실히 제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는 셈이다."
중국 푸젠성 성도인 푸저우(福州)시 대만투자기업협회의 좡푸츠(莊福池)회장은 24인터뷰에서 ECFA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좡 회장은 나아가 향후 중국과 대만간의 경제통합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세계수출시장에서 막강한 '차이완 파워'를 과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푸저우에서 20년째 가공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좡 회장은 "금융위기 이후 위축된 대만경제는 중국정부가 푸젠성에 대만경제특구를 조성하고 양안간 경제통합 실험에 나서면서 중국투자를 경기회복의 돌파구로 삼고 있다"며 "이미 중국에 진출한 대다수 수출중심 대만기업들도 푸젠성을 전진기지로 삼아 서부내륙 등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수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내년 중으로 ECFA가 발효될 경우 관세인하 효과로 중국수출에 있어 한국 등 여타 국가 기업들 보다는 대만기업의 경쟁력 제고가 이뤄질 것이며 대만과 중국기업간 전략적 기술ㆍ자본협력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그는 "한국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색채의 경제구조인 반면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로 이뤄져 대만과 중국기업의 전략적 합종연횡은 더욱 쉽게 이뤄질 것"이라며 "이 같은 기업간 합종연횡은 보다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양안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인터뷰/ 린융젠 푸젠성발전연구센터 처장
"중국은 여러 국가와의 다변 무역을 추구하지 양자무역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대만이라고 할 지라도."
중국 푸젠(福建)성 정부 발전연구센터의 린융젠(林永健) 처장은 24일 중국과 대만 양안간의 이른바'차이완'결속이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차이완 효과'에 대한 한국의 경계심을 의식한 듯 "이를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까지는 없다"며 단지 '사유(思惟)상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린 처장은 "중국과 대만간 긴밀한 경제적 협력은 상호간에 공통이익을 취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일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푸젠성과 대만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언어ㆍ문화ㆍ종교 방면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푸젠성을 중심으로 경제개발을 추진중인 하이샤(海峽)시안(西岸)경제구가 대만기업들에게만 투자의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기업들에게도 동등한 대우를 할 수 있게 항상 문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기업들이 푸젠성의 장점을 십분 살리고 중소기업 중심인 대만기업들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 성공전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다른 나라 기업들과 차별적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핑탄다오=장학만 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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