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등단한 소설가 박금산(37ㆍ사진)씨의 두번째 소설집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이룸 발행)는 꿈을 잃은 인물들의 무력한 일상으로 점철돼 있다. 그들이 무력함을 견디는 방법은 위악, 혹은 환상이나 망상을 통해서다. 그녀는>
꿈을 잃은 자의 상실감은 작품 속에서 신체적 약점이나 특이한 병증으로 상징된다. 부모로부터 아파트를 물려받고 대학 교직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나 키가 작아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내('이국적 고양이의 방'), 고소공포증이 있는 백화점 방송실 직원('17층 아래의 나뭇잎_현기증') 같은 이들이다. 20대 시절의 꿈을 포기하고 범속한 일상에 투항한 그들,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돌파하려는 그들의 행동은 작가의 말처럼 "치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뻔뻔"하다.
외국인 여성을 자신의 아파트에 세 들인 '이국적 고양이의 방'의 사내. 그는 세입자에 대해 관음증적 욕망을 품고 슬그머니 방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기도 하지만, 그녀의 대응은 방에 전자자물쇠를 달고 창문에 창틀을 설치하는 것이다. 방 한 칸에 1년짜리 계약을 맺으면서도 그녀는 공증 계약서를 요구한다. 자신의 환상이 깨어졌을 때 이에 대응하는 사내의 야비하고 속악한 심리묘사는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사내는 유학을 떠난 친구가 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하자 "미안하지만 짠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사는 게 짠해 보이기 시작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고 코웃음치고, 외국인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에 세 들어 은둔하는 이유가 동생 병원비 때문에 고리 사채를 빌려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어쩜 그렇게 불행의 조건들은 인종을 초월해서 비슷한 것으로 가지고들 있는지 웃음이 났다"고 조소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의 꿈을 꾸었던 '17층 아래의 나뭇잎'의 사내. 이제 그 꿈은 동거녀가 여행을 떠나면 홀로 '쿠바'라는 바와 '모스크바'라는 맥주집, '체게바라'라는 만두집을 전전하는 것으로 가끔 떠올릴 뿐이다. 그의 내면의 공허함은 동거녀가 주차 문제로 이웃집 유부남과 시비가 생긴 뒤 두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을 것이라는 끝없는 망상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 주인공들의 환상과 위악과 망상의 몸짓에서 배어나오는 쓸쓸함, 그것이야말로 박씨 소설에 독자들이 공명하도록 하는 힘이다.
박씨는 작가의 말에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꿈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상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것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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