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KIA타이거즈 선수들을 향해서였다.
정 부회장은 24일 KIA타이거즈가 9회 말 끝내기 홈런으로 SK와이번스를 누르고 극적으로 우승한 직후 열린 축승회에서 "진심으로 정말 고맙다는 의미에서 제가 인사를 하겠습니다"라며 갑자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우승 과정이 너무) 드라마틱했고 땀 흘린 성과가 드디어 나타났다. 이렇게 감격스러운 건 처음이다. ''드디어 KIA가 1등의 맛을 보게 해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참 그랬다"라며 운을 뗐다.
정 부회장에게 이번 KIA의 우승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2001년 자금난에 빠진 해태타이거즈를 인수했지만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이라는 해태 시절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7년에는 첫 꼴찌라는 불명예를 감수했다. 더구나 고 정주영 회장 시절부터 스포츠 단의 성적으로 아들들의 경영 능력을 가늠했던 그룹 내 전통이 강했던 지라 충격은 꽤 컸다.
게다가 기아차도 같은 해 정의선 사장 취임 초기 554억 원의 영업 적자에 허덕였고 국내 시장 점유율은 한때 22%까지 떨어졌다. 정 부회장은 김조호 단장에게 "이제 제발 이기는 야구를 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룹 일부에서는 야구단 부진은 정 부회장의 이미지에 좋지 않다며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기에 정 부회장은 누구보다 올해 타이거즈의 우승을 간절히 바랐다. 그는 5차전이 열린 22일 야구장을 찾아 조범현 감독, 선수단과 함께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쳤고 경기 중에는 1루쪽 관중석에 앉아 팬과 함께 팀을 응원했다.
더구나 지난해 정 부 회장이 시도한 '디자인 경영'이 3,085억 원 영업 흑자를 거두며 부활의 서막을 알린 데 이어 우승 전날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 3,135억원 영업 이익, 사상 최대인 4,020억 원의 순이익을 얻은 터라 우승의 기쁨의 몇 배 커졌다는 게 기아차 관계자의 말이다.
정 부회장은 이날 "야구단 창단 때 기아차는 힘들었지만 어려움을 딛고 좋아지고 있다"라며 "야구단의 존재와 우승 성과가 제일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좋은 결과를 내줘 기아 식구들은 자신감과 존경심을 갖고 있다"라며 "야구단처럼 기아차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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